‘고독사’라는 말이 이제 낯설지 않다. 자식과 아내를 멀리 유학 보낸 기러기아빠의 고독사, 독거노인의 고독사, 그리고 요즘엔 청년고독사 소식까지 들려온다. 국가(글로벌) 차원의 경제문제와 지극히 개인적인 원인 혼재된 사회문제로 현대인은 위축되고, 문을 닫아 걸고 고립되더니 말라비틀어간다. 그런 문제를 바라보는 영화가 지난 주 개막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었다. 홍성은 감독의 데뷔작 <혼자 사는 사람들>이다. 주인공은 혼자 산다. 칸막이 쳐진 사무실에서 일하고, 혼자 밥을 먹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쓸쓸한 아파트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진아(공승연)는 카드회사 콜센터의 유능한 직원이다. 그 어떤 고객의 전화에도 차분하게, FM대로, 무난하게 상담을 끝낸다. 그 어떤 진상고객의 황당한 전화에도 최상의 솔루션을 제공한다. 하지만 진아의 삶은 단조롭다. 혼자 사는 아파트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사무실에 오고, 헤드셋을 쓴 채 일을 하고, 회사 근처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퇴근하는 버스에선 이어폰으로 동영상을 본다. 아파트 빈방에서도 혼밥에 동영상 시청으로 나머지 시간을 채우고 언제나처럼 눈을 감는다. 세상에 나와 일을 하지만 세상과 담을 쌓은 것과 진배없다. 아파트 옆집 남자가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거슬리고, 가끔 아버지 문제로 인상을 찌푸릴 뿐이다. 아버지와는 인연을 끊고 싶을 뿐이다. 회사에 수습사원 수진(정다은 분)이 들어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 전화 받는 방법, 고객 응대하는 요령을 일러준다. 고객의 마음을 거슬리게 하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어디 감정노동자가 쉬운 일인가. 그런데, 어느 날 아파트 옆집 남자가 고독사 했단다. 진아는 그 집에 새로 이사온 남자(서현우)의 행동에 조금 놀라게 된다.
1인 가구 수가 급속하게 늘었다. 마트에서는 ‘1인’을 위한 소단위 포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펜데믹 시대를 맞아 혼자 먹고, 혼자 즐기는 경제가 일반화되고 있다. 그런데, 원래부터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기만의 영역에서 평온을 얻는 나홀로족(族) 사람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에서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진아의 이야기를 전한다. 물론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삶을 원했던 것은 아니리라. 가족과의 괴리, (아파트)이웃과의 단절, 그리고 직장에서의 고독은 진아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공승연이 연기하는 진아는 시종일관 무표정하다. 고객의 전화응대는 차가움이 뚝뚝 떨어질만큼 군더더기가 없다. 벽 하나 건너 이웃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엮이기가 싫은 것이다. 나의 영역에 누군가 들어오는 것을 끔찍이 싫어할 뿐이다.
그런데 그런 얼음공주 진아가 아프다면? 일이 생긴다면? 아버지와도 담을 쌓고, 이웃과도 벽을 쌓고, 회사도 그만 둔다면. 진아는 5500만이나 되는 사람이 사는 대한민국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존재감 제로의 삶이 되어간다. 어느날 그가 세상에서 사라져도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아니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나머지 혼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어폰을 쓰고, 유튜브 영상에 몰입할 것이다. 슬픈 현상이다.
홍성은 감독의 <혼자 사는 사람들>은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5차례 상영된다. 이어 이달 19일 개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