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코로나 시대에 맞춘 특별섹션으로 [스페셜 포커스: 코로나, 뉴노멀]이 편성되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전주영화제는 코로나 여파로 정상(?)적인 영화제운영이 힘들어졌다. 어쩌면 객석 띄어앉기, 온라인상영 병행진행, 화상인터뷰가 영화판에서는 ‘뉴노멀’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JIFF를 통해 소개되는 ‘코로나 영화’에서 관심이 가는 작품은 단연 중국의 ‘코로네이션’(Coronation)이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다는 글로벌 재앙 ‘코로나’를 중국에서는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사실 얼마 전 [최미역행]이라는 중국 프로파간다 스타일의 ‘우한 이야기’가 개봉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의 감독 아이웨이웨이(艾未未)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반체제작가이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설치예술도 하고, 다큐멘터리도 찍는 유명인사이다. 줄곧 중국입장에서는 불편한 소리와 작품만을 쏟아내는 그는 요주의인물이었고, ‘탈세혐의자’로 찍혔고, 감옥생활도 했고, 현재는 망명자 신분으로 유럽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몸은 해외에 있지만 중국내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우한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다큐로 만든다. 우한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든 찍은 영상을, 어떻게든 해외로 반출하였고, 아이웨이웨이는 500시간 분량의 영상을 모아 114분의 다큐로 완성했다. 바로 ‘코로네이션’이다.
<코로네이션>은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더니 전격 봉쇄된 우한시의 내부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첫 장면은 외부에서 우한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우한은 봉쇄된 상태이다. 고속도로에서 외부 번호판을 단 차량으로 어김없이 신고당하고, 공안의 단속을 받는다. 지금 우한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곧이어, 우한의 삶이 펼쳐진다. 76일간 봉쇄된 우한의 모습은 중국당국의 효율적 미디어관리에 의해 ‘ 대한 인민의 승리’만이 회자된다. 그런데 <코로네이션>에는 그 때 우한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들 - 병원에서의 사투, 의료진의 사투, 장례식장의 풍경 등과 함께 아파트 입구에서 펼쳐지는 택배원 영상까지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물론, 당국에서 펼쳐지는 관제행사도 포함된다. 당시 중국 각지의 의료진이 불원천리 우한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며칠사이에 뚝딱 완성된 긴급의료센터에서 묵묵하게 코로나와 죽음을 불사한 전투를 펼치는 것이다.
당시, 우한에서 펼쳐진 이야기는 책으로도 나왔고, 중국 국영방송 CCTV에서 다큐로도 만들어졌으며 충분히 상찬되었다. 아이웨이웨이의 <코로네이션>에서는 지구적 비극에서, 비극의 진원지인 우한의 이야기를 나름 다양한 각도에서 담는다. 그것은 아마도, 그동안 보지 못한 민초의 불만과 분노가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원인도 모르고, 이유도 모른다. 아마 대장정을 경험했을 나이 많은 할머니가 “당을 믿고 따르면 된다. 나라가 책임진다.”는 이야기를 거듭 말하지만 아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비록 프로파간다이지만, 각지에서 몰려온 의료진들이 방호복을 꼼꼼히 챙겨 입고, 긴 복도를 따라 중환자를 만나려 가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그리고 휑하니 비워진 우한 시내를 드론이 잡아낸 장면도 아포칼립스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영화를 만든 아이웨이웨이는 중국의 대표적 반체제인사이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중국의 유명작가, 현대시인 아이칭(艾青)이다. 모택동과 함께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초기 공산당 인물이다. 아이칭의 원래 이름은 장정함(蔣正涵)이다. 프랑스로 유학 갔을 때, 그의 이름을 두고 “아, 장개석(蔣介石)과 같은...”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그는 장(蔣)씨 성을 버린다. 장개석은 당시 중국을 두고 공산당과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이던 국민당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자신은 ‘장’씨가 아니라며 초두 변(艸)에 ‘X'자만 남기고 ’艾‘(애)자를 자신의 성으로 삼은 것이다. 그렇게 열혈애국시인이었던 아이칭의 아들, 아이웨이웨이는 지금 중국의 눈엣가시가 되어, 아픈 곳을 콕콕 지르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아이 감독의 이 작품에 뉴욕영화제, 토론토영화제, 베니스영화제가 관심을 보였지만 결국 상영을 거부했다고 한다. OTT 넷플릭스와 아마존도 이 영화를 거부했다고 한다. 아이웨이웨이가 2015년 ‘레고’로 설치예술을 하려고 하자, 레고가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다. 이유는 짐작이 갈 것이다. 글로벌한 사업을 하려면 중국 눈치는 기본적으로 봐야하는 세상이 된 모양이다. 그럼에도 전주가 이 영화를 상영했다니 조금 놀랍다. (지금 찾아보니 아마존 프라임에서는 이 작품을 볼 수 있다)
코로네이션은 ‘대관식’의 뜻도 있지만, ‘코로나’(Corona)와 ‘네이션’(Nation)을 합친 말일 것이다. 어쨌든, 전 지구적 재앙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