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감독이 [명량]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이순신 장군의 두 번 째 이야기 [한산:용의 출현]의 흥행추세가 예사롭지 않다. 장군 ‘이순신’의 명성과 감독 ‘김한민’의 능력이 극장가를 제대로 호령하고 있다. 전편 ‘명량’은 “신에겐 아직 열 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온 국민의 심금을 울린 명대사가 있는 1597년의 명량해전을 다뤘다. 이번에 나온 ‘한산:용의 출현’은 그보다 5년 앞선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초기의 전황을 다룬다. 당시 조선의 왕은 14대 선조였다. 일본의 야심은 날로 끓어오르고 있었지만 당시 조선은 ‘십만양병설’은 꿈같은 이야기였고, 일본을 다녀온 통신사 일행의 전언보고는 정치적 논란거리로 변질되면서 “괜찮아. 그깟 왜구들이...”라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하늘이 조선을 버리지 않았는지 이순신을 내렸고, 이순신은 전쟁 발발 1년 전 수군통제사로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영화 [한산:용의 출현]은 1592년 4월,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하고는 파죽지세로 북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태합’(太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을 받은 왜장들이 육로로, 해로로 조선을 유린한다. 왜군들은 조선 관군을 차례로 격파하며 한양으로 향한다. 이들 중 변요한이 연기한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는 용인 광교산 전투에서 대승리를 거두며 조선 진영을 뒤흔들어놓는다. 하지만 바다 상황은 달랐다. 와키자카는 이순신의 조선 수군에 맞서기 위해 병력을 보강한다. 이순신도 만반의 태세를 갖춘다. 물론 그 중에서 경상우수사 원균(손현주)도 있다. 이순신은 정예수군과 함께 원균의 수하까지 아우르면 해전으로 뛰어간다. 그에게는 거북선과 학익진, 그리고, 조선의 군사가 있었다.
김한민 감독은 1761만 명이라는 역대 최고 흥행작 [명량]의 위세에 힘입어 속편 ‘한산’과 ‘노량’을 잇달아 찍을 수 있었다. ‘명량’ 때와는 달리, 판옥선과 거북선을 실제 남해에 띄우지 않았고, 크로마키(블루매트)의 CG로 당시의 해전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명량’에서는 최민식이 연기한 카리스마 넘치는 이순신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번 ‘한산’에서 박해일이 연기하는 이순신의 모습은 다르다. 우유부단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속내를 전혀 짐작 못할 포커페이스의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녹둔도’에서의 경험과 백의종군이라는 수모를 이겨내고 조선의 바다를 책임지고 있었다.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김한민 감독은 그 당시 동아시아 상황 같은 역사적 맥락이나 조선 조정의 실정은 최소한의 설명으로 끝낸다. 일본 백년 전국(센고쿠)시대를 끝장낸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지략이나 휘하 장군들의 용맹성은 명(明)을 향한 호승심으로 단순화 시킨다. 그리고 조선의 상황은 원균의 우행(愚行)으로 충분하다. 감독은 후반부의 해전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김한민 감독은 데뷔작 [극락도 살인사건](2007)에서 뭍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 살고 있는 십여 명의 주민의 몰살극을 극적으로 이끌어낸다. 그 영화에서도 박해일은 마지막에 배 위에서 목숨을 건 생존의 싸움을 펼쳤다.김한민 감독은 [최종병기 활] 이후 역사 이야기에 눈을 돌린다. ‘활’에서는 병자호란 때 우리 땅을 침략한 북방 침략자에 맞서 싸우고, ‘명량’과 ‘한산’에서는 남쪽 오랑캐와 ‘사즉생 생즉사’의 전쟁을 펼치는 것이다. 이런 영화를 두고 영화의 완성도를 논하거나, 별점을 부여할 수 없을 것이다. 대신, “역사를 잊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라는 교훈을 시각적 교훈으로 남겨줄 것이다.
이미 많은 이순신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 이제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역사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된 모양이다. 조선이 그때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이유를, 조선의 수군이 왜군을 무찌를 수 있었던 이유를 명심해야할 것이다. 아마도 [탑건 매브릭]이 하늘에서의 작전에 성공한 이유와 같을 것이다. 매브릭은 중요한 것은 ‘무기’가 아니라 ‘파일럿’이라고 말했고, 이순신은 ‘거북선’이 아니라 ‘불의’에 맞서는 ‘의’에 대해 말한다.
물론,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거북선의 모습이나 전장에서의 활약상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리고 변덕스러운 바다에서 수백 척의 배가 뒤엉켜 벌어졌던 해전의 실상이 어떠했는지는 단편적, 결과론적 (남아있는) 역사서술로 재구성할 수 있을 뿐일 것이다. 그래서 학익진이나, 판옥선, 안택선과 화포, 그리고,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손에 쥔 부채의 그림에까지 더 많은 연구와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영화 ‘한산:용의 출현’은 충분히 볼 가치가 있고, 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영화가 지금 대중의 환호를 받는다는 것은 지금 이 시기가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다는 반증일 지도 모른다.
▶한산:용의 출현 감독:김한민 출연: 박해일 변요한 안성기 손현주 김성규 김성균 김향기 옥택연 공명 박지환 조재윤 윤제문 박훈 이준혁 ▶2022년 7월27일 개봉/12세관람가/129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