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은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특히나 성룡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단다. 그래서 영화감독이 되었고 줄기차게 액션영화를 찍는다. 류승완 감독은 개그맨 김병만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려왔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고생하며’ 실력을 쌓아온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고 배웠으며 연출부에서 영화를 습득한 것이었다. 그가 자투리 필름을 얻어 ‘액션’ 단편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을 하나로 엮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완성시켰다. 그리곤 충무로의 활력 넘치는 영화감독이 된 것이다. 그가 충무로 영화판의 주류에 편입하고 12년 만에 <베를린>이란 꽤 규모가 큰 액션블록버스터를 내놓았다. 베를린을 배경으로 남과 북의 스파이전쟁, 동과 서의 첩보전쟁을 거창하게 펼쳐놓는 것이다. 이~야, 이 감독 정말 출세했다!
동명수, 표종성을 쫓아라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의 베테랑 요원 정진수(한석규)가 베를린에서 국제적 규모의 불법무기 거래 현장을 감시하는 영화 초반부에서부터 관객을 단박에 휘어잡는 액션활극이 펼쳐진다. 정진수는 자신의 눈앞에서 놓친 그 놈이 북한 특수요원 표종성(하정우)임을 알게 된다. 베를린 한국대사관. 청와대 측에서 감찰 나온 ‘높은 분’(곽도원)은 국정원의 어설픈 작전실패에 대해 힐난하지만 정진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는 자신의 임무에만 매진한다. ‘고스트’ 표종성을 잡기 위해. 한편 베를린의 북한대사관. 무기거래현장이 누군가에 의해 사전에 정보가 샌 것에 대해 북한대사(이경영)도, 표종성도 무언가 거대한 음모가 진행 중이란 것을 눈치 채게 된다. 이때 북한에서는 이 일을 조사하기 위해 국가보위부 소속의 동명수(류승범)가 파견된다. 김정일 사후 최고 권력을 유지하기위해 혈안이 된 북한군부 실권자 동중호(명계남)의 아들 동명수가 왜 베를린에 직접 날아온 것일까. 정권교체기의 위험한 시기에 북한의 검은 돈줄인 베를린주재 북한대사의 망명시도 낌새라도 알아채고 그를 저지하기 위해서일까. 동명수는 표종성의 아내이며 베를린 북한대사관의 통역요원인 련정희(전지현)를 의심한다. 련정희는 단순한 통역요원이 아닌가? 음모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이중간첩이 되어야하는 표종성의 이야기인가? 이스라엘 모사드도, 미국 CIA도, 아랍 테러리스트들도 맘껏 갖고 노는 동명수의 최종목표는? 영화는 숨 가쁘게 달려간다.
국정원, 도대체 하는 일이 뭐냐
영화 ‘베를린’은 해외에서 활약하는 국정원요원의 활약상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국정원의 원훈(院訓)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다. 정진수 요원은 제임스 본드처럼 멋을 부린다거나 국내정치의 주인공, 혹은 ‘언론/네티즌의 밥’으로 활약하지 않는다. 베를린 하늘아래, 어느 지하실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죽어나가도 대한민국 국민 그 어느 한 사람도 그의 존재나 그의 활약상을 알지 못한다. 단지, 그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거나 그의 희생에 의해 파멸의 시간이 늦춰졌다는 것을 누군가는 알 뿐이다. 국정원이 하는 일이 그렇다. 그러면 북한에도 유사한 기능의 조직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조직은 아마도 최고지도자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어둡고, 비열하고, 치명적인 임무나 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국가의 비밀스런 정보조직은 다른 나라와 비밀스런 ‘협력’도 곧잘 한다. 오사마 빈 라덴을 처치하기 위해 미국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파키스탄과도 장기간 협력했듯이 말이다. 아마도 현장에서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런 극단적 조우와 예기치 못한 충돌이 곧잘 일어나리라. 각 조직의 요원들은 각국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적절한 수준의 액션과 리액션을 본능적으로 펼칠 것이다. 단지 그 완벽한 그림과 그 수행원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을 뿐이지.
류승완, 액션의 장을 넓히다
류승완 감독은 영화 개봉에 앞서 진행된 일련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신작 영화에 대해 재미와 즐거움, 몰입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류승완은 이른바 ‘성룡 키드’이다. 성룡이 완전히 날아다니던 시절의 영화 - 1980년대 초중반 –에 매료되었었다고 말했었다. 그 당시 성룡의 액션물, 그리고 그 즈음에 나온 ‘예스 마담’시리즈나 이후의 견자단 액션을 보면 액션영화 감독의 피를 끓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게 할리우드 ‘본 시리즈’와 결합하면 ‘류승완의 베를린’이 나오는 게 정해진 코스일지 모른다. 하늘에선 첩보위성이 실시간으로 적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현대적 스파이전쟁의 무대에는 요원과 요원이 서로 쫓고 쫓기고 총을 쏘고 총알이 떨어지면 저렇게 육박전을 펼치는 것이 자연스럽다. 성룡의 초기영화를 다시 보면 액션이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지 모른다. 줄거리는 빈약하고 러닝타임을 채우기 위해 들판에서 끝도 없이 마지막 한판 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손과 손이 교차하고 발과 발이 부딪히며 끝도 없이 ‘얍,“ ”헛“ ”이야~“ 괴성을 지르며 최후의 일격을 노리는 것이다. ’본 시리즈‘는 그보단 짧게 끝난다. 하드보일드 액션이 펼쳐지더니 뾰족한 흉기로 급소를 노려 순식간에 적을 제압한다.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 액션의 끝은 어떨지 궁금했다. 하정우와 류승범의 갈대밭 액션은 ’성룡의 초기영화 필‘이다. 정두홍 감독의 액션안무는 이제 국제적 수준에 올랐다. 정두홍이 ’액션감독‘으로 미국에 진출한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베를린에서 최고의 액션 씬은 아마도 하정우와 전지현이 아파트에서 빠져나갈 때 하정우가 전선에 칭칭 감겨 굴러 떨어지는 장면일 것이다. 이것은 성룡이 날아다니던 시절 <폴리스 스토리> 같은 영화에서 보여주던 액션씬을 능가한다. 성룡이 쇼핑몰에서 이와 유사한 액션씬을 보여준 적이 있지만 이게 훨씬 세련되고, 멋있고, 우아하다!
이 영화, 액션영화이다.
한국 액션영화의 특징은 멜로적 요소를 적절히 섞는 것이다. <베를린>에서는 전지현과 하정우의 부부애이다. 물론, 류승완 감독은 그걸 대단한 이야기로 펼쳐놓은 것을 꺼려한다. <베를린>은 국가적 차원의 스파이 전쟁을 다룬다. 그런데 한국 측 정보요원들은 마치 일반적인 직장생활하는 듯하다. 상사와의 정치적 요소가 개입되고, 작전수행의 동력이 ‘동료의 죽음에 대한 감정적 보복’ 성격이 짙다. ‘교차로에서 좌회전조차 하지 않는다’는 골수애국 정보원요원이 북한 보위부 요원과 손을 잡아 마지막 액션을 펼치는 것은 영화적 재미이다. 하정우는 그런 한석규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갈 것이다. “내 일이니까.”라는 이 한 마디에 쿨한, 국정원요원의 정신세계가 반영된 것인지 모른다.
이 영화는 ‘본 시리즈’만큼 속편이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충무로 현실에선 속편이 저평가되고 무시당하는 감이 있지만 ‘베를린’의 구조는 한반도의 정세만큼이나 무궁무진한 속편의 소재와 줄거리의 연속성을 갖추고 있다. 동명수는 죽었을지라도 표종성은 살아남았고 그의 제자들은 북한 땅에서 득시글거릴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정진수는 작전실패의 책임을 지고 한직으로 밀려났다가 ‘고스트’요원이 되어 ‘아이리스’에라도 특채될지 누가 알랴. 류승완 감독 속편 꼭 만드세요!!!!! (박재환 201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