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에게 영화감상은 우표수집과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특히 역사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볼 때는 말이다. 지난 주 막을 올린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터즈] 섹션에서 소개되는 이스라엘 아비 모그라비 감독의 다큐멘터리 <첫 54년 - 약식 군사 매뉴얼>(원제:The First 54 Years – An Abbreviated Manual for Military)을 보면 그러하다. 러닝타임 110분짜리 이 작품을 보면서 우리가 몰랐던 중동 그 지역의 감춰진 역사의 한 면을 보게 된다.
한국 사람이 갖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생각은 주로 웅장한 음악의 <영광의 탈출> OST와, [탈무드], 그리고 유대인의 우수한 DNA에 관한 전설 같은 이야기이리라. 아마도 21세기 이전, 영문 시사잡지를 보았던 세대라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펼쳐지던 폭동, 테러 등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아라파트와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라는 것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먼저, 그 시절을 약술하면 이렇다.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2,000년을 전 세계에 흩어져 살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의 신생국가로 독립한다. 그들은 제국주의 시절 영국령이었던 팔레스타인의 서부 방면, 가나안 지역을 무력으로 접수하여 ‘이스라엘’을 건국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인접한 요르단, 팔레스타인, 이집트, 레바논, 시리아와 싸우면서 성장해 왔다. 1967년, 이른바 6일전쟁의 결과로 요르단 서쪽지역인 ‘서안지구’(웨스트뱅크)와 이집트 북쪽의 가자지구(Gaza Strip)를 점령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곳을 점령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이스라엘 국민이라면 남녀가 모두 2~3년의 병역을 이행해야하고, 40살이 될 때까지 예비군으로서 틈틈이 나라를 지켜야한다. 이들은 점령지의 질서유지에 투입된다. ‘점령군’인 그들은 원래 그 곳에 살던 ‘원주민’ 팔레스타인들을 어떻게 관리했을까. 일제강점기처럼? 영국령 인도처럼? 수십 년 동안 점령지에 투입된 이스라엘 제대군인들이 자신의 군 경험을 자발적으로 기록에 남기기 시작했다. 2004년 설립된 비정부기구(NGO)인 ‘Breaking the Silence’이다. 하필이면 ‘BtS’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정부의 치부일 수도 있는 반백년의 팔레스타인 억압사례를 양심적으로 밝히는 프로젝트였다. 다큐멘터리 감독 아비 모그라비는 그 인터뷰를 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런 식이다
“1978년 웨스트뱅크에 진입하여 군 막사를 세웠다. 원래 그곳에서 농사를 짓던 팔레스타인 노인이 당나귀와 함께 다가왔다. 원래 땅주인이었다. 총을 든 군인은 그 노인을 내쫓았다. 군인들은 이곳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원래 그 땅에는 수백만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살았지만 그때부터 수백, 수천, 수만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착민은 높은 언덕에 자리를 잡는다.
이들이 팔레스타인 사람을 관리하는 것은 악질적이기까지 하다. 취업허가, 운전면허증 발급을 중단해 버리고, 단속과 봉쇄 전략을 수십 년간 이어간다. 그리고, 높다란 장벽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들은 체포, 구류, 구금, 행정구금, 구치, 감금, 투옥, 수감, 억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원주민을 옭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이스라엘의 군사전략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공격과 피해’에 대해 두 배, 세 배로 응징한다는 그 전법. 이스라엘 군인들은 그것을 ‘억제사격실습’이라고 표현한다. 어디선가 총알 하나가 날아온다. 그러면 이스라엘 군인들은 그쪽을 향해 2발, 3발을 쏜다. 그러다가 6발이 된다. 심심한 군인들은 줄을 서서, 서로 쏘아보려고 한다. 저쪽 팔레스타인 민간 밀접지역에 ‘억제사격실습’을 하는 것이다.
“와케프 붐” (서라, 탕!)
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원주민의 집에 들이닥친다. 한참 자고 있는 가족들을 깨운다. 어른도, 아이도. 이른바 ‘그냥’ 점검이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핸드폰을 들고는 잠에서 덜 깬 이들의 모습을 찍는다. 목적은 단 하나다. 그들이 희망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고통을 주는 것이다.
수배자를 잡으면 그냥 “나가!”라고 한다. 그가 뛰어나가면 “와케프, 붐”이라고 소리친다. ‘서라!’하고선, 그가 그 말에 따라 서든 말든 상관없이 총을 쏜다. 일단 경고를 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영상에서는 이스라엘 퇴역군인들이 당시 자신들이 한 행동이 ‘전쟁범죄 행위’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신에서 많이 보아온 여러 상황들이 당사자의 입에서 고해성사하듯이 쏟아져 나온다.
당연하겠지만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BtS'를 비난한다. 그리고, 이 NGO의 자금출처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한다.
이스라엘 제대군인들이 자신의 군 경험을 은밀하게 폭로하면서, 바라는 것은 조국의 멸망이거나 팔레스타인의 완전한 승리 같은 반역은 아닐 것이다. 분명한 약탈과 재산의 파괴, 폭력적 행위에 대한 자아비판이거나, 비인도적 군사조치에 대한 양심의 일단일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해 ‘다큐멘터리로 위장한 反이스라엘 선전’이라는 주장이 나올 만큼 조작된 미디어 프로파간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표수집’처럼 공부할 필요는 있을 듯하다. 당장 ‘이스라엘 뉴스’라면 코로나 백신을 다 맞고 마스크를 벗은 동네로만 알고 있지, 그곳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 형편은 아예 모르니 말이다.
‘첫 54년 - 약식 군사 매뉴얼’은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두 차례 상영된다. 영화제 기간 동안 OTT서비스 웨이브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