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요즘 유행하는 챗GPT에 유망 IT기술을 가진 스마트업 대표로서 인허가권을 가진 공무원(골프광)에 대한 로비 비법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챗GPT는 “고위 공무원에게 로비를 진행하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입니다. 윤리적인 문제와 법적인 제약이 있을 수 있으므로, 로비 활동이 법적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 경우, 골프가 담당자의 취미라면, 그 취미를 기반으로 한 합법적이고 윤리적인 접근 방법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몇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라며 아주 길게,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하정우는 챗GPT 아니어도 살면서 많이 보아왔을 것이고, 실제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며, 피부로 실감했을지 모른다. 그 모든 것을 영화 <로비>에 쏟아 붓는다. 고위공직자 골프접대의 알파에서 오메가이다.
실리콘밸리에서 공부할 때부터 배를 곯아가며 신기술 개발에 매진하던 윤창욱(하정우)은 현재 매립형 배터리충전기술을 가진 스타트기업인 윤인터랙티브 대표이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독보적인 기술이라 자부한다. 이게 주차장뿐만 아니라 고속도로에 깔린다면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신기술일 될 것이다. 이제 정부 국책사업에 통과만 하면 4조원 시장을 잡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대한민국!’ ‘돌출형’ 충전기술을 가진 업체가 끼어든다. 실리콘밸리 시절부터 자신을 이용해먹던 경쟁업체 손광우(박병은)이다. 손광우는 기술력은 뒤질지 모르나 로비력은 최강이다. 연구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국책사업 결정프로세스는 훤하다. 윤 대표는 어쩔 수 없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로비전쟁에 뛰어든다. “더럽고, 치사해도, 도장만 찍어준다면....” 그런데, 도장을 가진 자는 골프를 유난히 좋아한단다. 이제 골프력 제로의 윤 대표가 번개 골프레슨을 받고, 속성 로비과외를 받고는 골프장에 나선다. 빠~밤.
로비
골프를 몰라도 ‘로비’ 보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캘러웨이가 비싼 것인지, 골프카트를 누가 모는지, 캐디의 수입이 얼마인지, ‘알까기’가 바둑판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사회인야구’ 경험밖에 없는 창욱은 특별히 초빙한 골퍼 진 프로(강해림)와, 로비에 대해선 달인급인 언론사 박 기자(이동휘), 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디와 함께, 서울 요정(?)에서 멀리 떨어진, 도청 걱정 없는 드넓은 필드에서 “왜 우리 기술이 압도적인지?” 증명해야한다. 매립형 배터리충전기술이 아니라, 실장님의 골프접대에 관해서 말이다.
하정우가 <롤러코스터>(2013), <허삼관>(2015)에 이어 10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감독!) 영화 <로비>는 블랙코미디이다. 모든 상황은 짧게 나뉘고, 캐릭터가 넘쳐나고, 대사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영화는 로비를 펼치는 자, 로비를 받는 자, 로비를 돕는 자와 함께 그 로비에 끼어든 자가 뒤엉켜 정신없이 돌아간다. 하정우와 박병은의 대결은 ‘기업의 명운’을 건 대전이지만 각자의 사연이 끼어들며 모든 캐릭터들이 목숨 걸고 골프채를 휘두르고, 와인병을 흔들고, 골프카트를 운전한다. 그 와중에 도청작전도 펼쳐진다. 탄탄한 캐릭터와 꽉 찬 대사는 오래 전 월터 매튜와 잭 레먼의 클래식 헐리우드 작품을 마주하는 것 같다.
<로비>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는 살아있다. 하정우와 김의성, 박병은은 열정과 진심이 뒤섞인 캐릭터 대전을 펼치고, 강해림은 진흙탕인 된 필드를 지키는 연약한 스포츠맨을 훌륭하게 그려낸다. 이동휘는 얄미울 정도로 캐릭터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강말금도, 최시원도, 차주영도, 박해수도, 곽선영도, 현봉식도. 그리고 새벽부터 하얏트호텔에서 오픈런으로 ‘망고초콜릿코코넛무스케이크’를 공수한 호식이까지. 이런 싱싱하고 팔팔한 캐릭터의 향연을 만나보기는 쉽지 않다. 4월 2일 개봉하는 영화 <로비>이다.
▶로비 ▶감독:하정우 ▶각본:김경찬 하정우 ▶출연:하정우, 김의성, 강해림, 이동휘, 박병은, 강말금, 최시원, 차주영, 박해수, 곽선영, 엄하늘, 이지훈, 김종수 ▶제작: 워크하우스컴퍼니,필름모멘텀 ▶배급:쇼박스 ▶개봉:2025년 4월 2일/106분/15세이상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