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비밀'
출발은 연극이었지만 영화로, 추리탐정(크라임씬)으로, 때로는 대형 스포츠이벤트 예술감독(인천아시안게임)으로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진 감독이 다시 연극으로 장인의 본색을 드러낸다. 2015년 초연 무대를 가졌던 <꽃의 비밀>로 대학로에 돌아왔다. 지난 달 8일 첫 선을 보인 <꽃의 비밀> 공연장은 한 달 가까이 웃음이 이어지고 있다. 작품은 특이하게도 한국이 배경이 아니라 이탈리아이다. 파스타는 등장하지 않지만 축구 좋아하는 남편과 포도주 좋아하는 여자들이 등장하여 이탈리아 판 <사랑과 전쟁>을 펼친다.
무대 중앙엔 소파가 자리하고 있고, 오른 쪽엔 주방과 테이블, 왼쪽엔 화장실 문이 보인다. 더 왼쪽에도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장소가 살짝 붙어있다. 이곳은 이 동네 여인네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왕언니 소피아의 집이다. 이곳에 여인들이 각자의 사연을 들고 하나씩 모여든다. 술고래 자스민, 미모 담당 모니카, 맥가이버 지나. 이들의 남편은 모두 차를 타고, 고개를 지나 유벤투스와 밀란의 축구 경기를 보러 떠났단다. 이탈리아 여인 네 명이 만나서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어떤 접시와 어떤 비밀이 유지되겠는가. 막내 지나의 폭탄 발언으로 이제 소피아-자스민-모니카-지나는 하나로 뭉쳐야 한다. 공범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가 않을 것 같다. 얼마 전 이탈리아엔 대형 지진이 일어났고, 지금 밖에는 눈이 쏟아진단다. 이것도 설정이다!
연극 <꽃의 비밀>은 장진의 장기가 잘 드러나 코믹상황극이다. 아주 평화롭게,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과 특징을 하나씩 보여주고는 갑자기 폭탄 하나를 터뜨리는 것이다. 이제 다 같이 심지가 타들어가는 폭탄을 앞에 두고 해결책을 찾아야한다. 빨간 선을 끊어야할지, 밟아야할지, 창문으로 내던져야할지. 그 폭탄이 정말 터질지는 알 수 없다. 폭탄에 신경 쓰는 동안 지붕엔 핵미사일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물론, 이 작품에 무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장진은 무대극에 필요한 인물을 잘 만들고 배치하는데 정평이 나있다. 네 명이면 족하고, 거기에 두 명이 더 등장하면 금상첨화이다. 전작 <얼음>에서는 두 명의 등장인물과 알 수 없는 한 명의 캐릭터로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했다. <꽃의 비밀>에서는 네 명의 여인네가 돌아가며 코믹의 풍미에 긴장감의 소스를 뿌리는 것이다.
'꽃의 비밀'
연극 <꽃의 비밀>은 영국영화 <웨이킹 네드>(1998)를 연상시킨다. 아주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누군가 거액의 로또가 당첨되었는데 당첨자가 급사한 후, 이제 마을 주민이 모두 똘똘 뭉쳐 당첨금을 나눠 갖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구조. <꽃의 비밀>의 네 명의 여인네는 이제 남편 ‘사망보험금’을 수령하기 위해 기발한 연극적 수작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장진의 장기가 잘 드러난다. 자스민이 폭소만발 술주정을 계속 피우고, 모니카의 외모가 빼어나게 훌륭하고, 지나는 뭐든지 다 고치는 공대생 출신이어야 하 이유. 당연히 왕언니 소피아가 소파의 무게 중심을 잡는 이유가 연극 초반부터 차곡차곡 빌드업이 되었기에 관객들조차 그 사기공모극에 숨죽이고, 박장대소하며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참, 남편들은 축구 보러간 것이 아니었단다! 스포조차 못 되는 설정!
석 달 가까이 이어지는 공연이기에 연기자들의 페어가 풍성하다. 박선옥, 황정민, 정영주가 왕언니 소피아를, 장영남—이엘-조연진이 유쾌한 술꾼 자스민을, 이연희-안소희-공승연이 매력미녀 모니카를, 김슬기-박지예가 사건의 원흉이 된 셈인 지나를 연기한다. 그리고 네 명의 공모극을 조사하기 위해 이곳에 도착하는 보험공단의 의사 카를로에 조재윤-김대령-최영준이, 간호사 산드라 역에 정서우-전윤민이 출연한다.
지난 28일 공연에서는 정영주-장영남-공승연-박지예가 무대를 휘어잡았다. 정영주는 영화든, 드라마든, 그 어떤 무대이든 확실히 여자들의 이야기의 판을 깔아주는 장인이다. 장영남 배우는 셰익스피어 고전극의 우아한 캐릭터가 아니라 이런 SNL급 코미디에서 훨훨 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이번이 첫 연극 무대인 공승연은 장진이 생각한 모니카의 이미지에 맞춤형 캐릭터로 열연을 펼친다.
장진 감독은 10년 전 이 작품을 쓸 때 처음부터 외국 공연까지 염두에 두고 한국이 아니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삼았다고 한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이미 소개되었고, 다른 포맷으로도 해외진출이 가능한 스토리인 것 같다. 제목을 왜 <꽃의 비밀>로 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네 명의 여인이 ‘꽃’인 모양이다. 그들의 비밀을, 이 연극을 관람할 관객들은 소중히 간직하길.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5월 11일까지 공연된다. (박재환)
[사진=장차,파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