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어떤 영화일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아마도 북한의 생체무기 전문가가 캡슐에 숨어서 탈출을 시도하는 액션물인가 생각했다. 이런 ‘정무적 판단’은 크게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국방부가 청와대의 밀명을 받고 진행하던 ‘프로젝트 사일런스’라는 신형무기를 개발하다가 폐기단계에서 뜻밖의 재난상황과 맞물리게 되고, 차단된 공항대교 위에서 초특급 재난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스릴러이다. 어쨌든, 그 현장에서 ‘탈출’해야 한다.
동물(개)을 상대로 비밀스러운 생체실험을 하는 광경을 보여주는 인트로를 지나 영화는 청와대 국정논의 현장을 보여준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장관과 수석들 앉혀 놓고 긴급상황을 논의 중이다. (대통령은 보이진 않는다!) 해외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납치되었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난상토론 중이다. 국방부장관은 ‘당장, 우리 국민을 구해 와야 한다’고 말하고, 청와대 안보실장(김태우)은 머뭇거린다. 이때 안보실장의 오른팔인 행정관(이선균)이 나서서 “아직은 때가 아니다”는 정무적 판단을 내린다. 유력한 대선후보인 안보실장도 내심 선거 끝나기 전까지 이 문제가 불거지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 영화 시작은 이렇게 정치적인 모략과 캐릭터의 스타일을 잠시 보여주며 재난상황으로 직진한다.
기상악화로 시야가 극히 안 좋은 공항대교. 안보실 행정관은 지금 유학 가는 딸을 위해 공항으로 차를 몰고 있다. 그 공항대교 위를 달리는 차와 버스, 트럭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 정신 나간 유튜버가 ‘라방’을 하다 차가 전복되고 잇달아 연쇄추돌사고로 이어진다. 무려 100중 추돌. 뒤집힌 차량 가운데는 소속불상의 군용차량도 있다. 단순한(?) ‘짙은 안개 속 100중 추돌사고’일 줄 알았던 현장은 곧바로 지옥 같은 상황으로 변한다. 군용차량에는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군사용 실험견이 실려 있었는데 사로로 빗장이 풀리고 ‘무자비한 개’들이 도로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 ‘ 행정관’은 사고는 수습이 중요하다는 ‘정무적판단’을 내리고 그 짧은 순간에도 주군(主君)인 안보실장의 지지도를 올리려는 방책을 쏟아낸다. 하지만 안개 속 상황은 악화되고, ‘실험 개’들은 상상 밖으로 똑똑하다. 살기 위한 극한의 달리기와 숨기가 이어지고, 사건 은폐를 위한 수 싸움이 시작된다.
고전적 ‘재난영화’는 인간의 오만이 낳은 재난 상황 속에서 다양한 인간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드라마가 영화팬의 사랑을 받았다. <타워링>의 불타는 고층건물,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뒤집힌 초호화유람선, <에어포트>의 비행기사고까지. <탈출>에서는 다행히 ‘다리’가 부실공사 되지는 않았다. 재난의 발단은 그냥 정신 나간 유튜버의 차량전복으로 시작된다. 좀 더 그럴듯한 ‘트리거’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100중 연쇄추돌 속에서 많은 인물들이 차 밖으로 나와 공항대교 위에 자리를 잡는다. 청와대 행정관 이선균과 그의 딸, 감초 같은 렉카 기사, 비밀프로젝트의 책임자와 하필 그날 그 공항대교를 지나던 사람들이 뒤엉켜 탈출극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안개’라는 자연상황과 ‘군용견’이라는 크리처의 존재를 기반으로 인간드라마를 만들려고 했지만 마지막에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속편을 위해 살려둔 ‘E9’과 청와대의 정치꾼? 다행인 것은 영화가 96분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영제:PROJECT SILENCE) ▶감독:김태곤 ▶각본: 김태곤, 박주석, 김용화 ▶출연: 이선균, 주지훈, 김희원, 문성근, 예수정, 김태우, 박희본, 박주현, 김수안 ▶제공/배급:CJ ENM ▶제작: CJ ENM STUDIOS 블라드스튜디오 ▶개봉:2024년 7월 12일/96분/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