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이 비 오듯 쏟아질 것 같은 여름 극장가에 한반도의 지형도를 돌아보게 하는 두 편의 영화가 잇달아 개봉한다. 민간여객기 납치극 <하이재킹>과 북한병사의 탈주극 <탈주>이다. 기이하게도 ‘목숨을 건 현실타파’가 드라마의 추동력이 된다.

21일 개봉한 영화 <하이재킹>(감독 김성한)은 1971년 1월 23일 발생한 실제 비행기납치사건(하이재킹)을 소재로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이다. 1971년이라는 첨예한 남북대치상황을 고려한다면 얼토당토하게 과장되거나, 미화되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악마화 시키는 뻔한 카메라를 들이대지도 않은 작품이다. 1971년의 한반도가 어떠했는지, 그날 휴전선 동부전선 하늘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비행기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그 사람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하이재킹>은 영화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작금의 남북관계를 반추하게 만든다. 

영화는 먼저, 1969년 일어났던 또다른 하이재킹 상황부터 보여준다.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가 창공에서 기동훈련 중이다. 태인(하정우)과 동철(이동욱)이 몰던 전투기는 이내 실제상황에 맞닥친다. 강릉에서 출발한 민항기 대한항공 YS-11기가 납치되어 북으로 향하고 있었다. 태인은 이 상황에서 월북/납북을 저지하라는 무선명령을 이행하지 못해 강제전역하게 되고, 이제 민항기 조종사가 된다. 그리고, 1971년 1월 23일. 강릉에서 서울로 가는 F27 부기장으로 다시 한 번 아찔한 순간을 맞는다. 22살 이용대(여진구)가 기내에서 사제폭탄을 터뜨리고, 조종사에게 기수를 북으로 돌리라고 위협한다. 이제 강원도 상공에서는 조종간을 쥔 기장과 부기장, 폭탄을 든 납치범, 그리고, 두려움에 뜨는 승객들이 아슬아슬한 곡예비행을 하며 최악의 선택을 파하기 위해 발버둥 치게 된다. 납치되어 북으로 날고 있는 비행기를 저지하기 위해 공군 전투기가 근접 위협비행을 시작한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펼쳐진다. 

이 영화를 보기 전 SBS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2022.9.22)를 먼저 보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영화는 짧지만 임팩트 있는 도입부로 당시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황량한 당시 겨울 강릉공항의 어수선한 모습을 비추고, 이어 그 비행기에 탑승하는 승무원과 승객들의 면면을, 그들의 성격까지 간략하면서도 효율적으로 훑어간다. 관객은 ‘태인’의 상황을 보며 대한민국 공군 파일럿 출신의 군인정신과 민간항공사 부기장으로서의 서비스정신을 짐작한다. 그라면 기꺼이 목숨을 내던져 승객을 구할 것임. 그의 반대편에 선 인물은 고작 22살 청년 용대이다. 감독은 아주 짧은 삽화로 당시의 이데올로기의 실상을 전해둔다. (1971년이라면 한국전쟁이 끝난 지 20년도 지나지 않은 때이다!) ‘빨갱이’는 명확하게 공공의 적인 시기였다. 빨갱이를 향한 분노와 저주의 그물망은 의심스러운 자, 가족인 자, 강제로 월북당한 자에게까지 촘촘하게, 자의적으로 펼쳐져 있던 때였다. 용대가 ‘삐라’ 때문에 감옥에서 출소한 뒤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마주치는 것, 발에 밟히는 ‘구더기’에서 남북의 첨예한 대립구도와 감정의 극한치를 느끼게 된다. <하이재킹>에서 범인이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하이재킹>은 용대의 서사를 통해, 할리우드에서 보아온 테러리스트의 ‘신념’의 한반도적 변용을 보게 된다. 

1971년 당시, 조종사와 승무원, 그리고 보안관의 불굴의 정신으로 납북의 위기를 가까스로 면한다. 영화는 그런 긴장감 넘치는 납치극과 함께 ‘납치극’에 가려진 비극의 잉태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이날 발생한 사건으로 숨진 사람은 단 두 사람이란다. 납치범 ‘김상태’와 수습조종사 ‘전명세’이다. 하정우가 연기한 태인은 부기장 박완규와 수습조종사 전명세를 합쳐놓은 캐릭터이다. 그리고, 1969년 발생했던 북한 공작원 조창희에 의한 YS-11기 납북사건은 사건 발생 66일 만에 39명은 귀환조치 되었지만 기장과 부기장, 승무원, 그리고 승객 7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의 강요된 선택과 북녘에서 이어진 삶 또한 ‘영화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다.

▶하이재킹 ▶감독:김성한 ▶각본:김경찬 ▶출연: 하정우 여진구 성동일 채수빈 김동욱 최광일 김종수 문유강 임세미 김선영 ▶제작:퍼펙트스톰필름, 채널플러스 주식회사 ▶배급:소니 픽처스 코리아, 키다리스튜디오 ▶개봉:2024년 6월21일/100분/12세이상관람가

[사진=소니픽처스코리아, 키다리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