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다시 한 번 극장에서 볼 수 있다. 이번엔 흑백 버전의 <기생충>이다. 컬러판과 흑백판의 차이는 무엇일까. 색깔만 조정한 것일까? 봉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지하실의 냄새가 더 풍기는 것 같더라”라는 해외팬의 반응을 소개하기도 했다. 과연 컬러의 색감을 덜어낸 ‘기생충’에서는 반지하의 곰팡이 냄새와 송강호의 몸에서 풍기는 정의할 없는 체취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까.
집주인과 세입자들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네 가족은 전형적인 생계형 범죄가족이다. 이들은 털끝만큼의 죄의식도 없이 타깃으로 정한 한 가족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물론, 처음 의도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이들은 유망 중소IT기업 대표 동익(이선균)의 집에 하나둘 자리를 꿰어 차 들어가기 시작한다. 기우는 딸의 과외선생으로, 기정은 아들의 미술지도 선생으로, 그리고는 엄마는 입주파출부(집사)로, 마지막엔 아빠가 운전기사로 입성한다. 사회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서민층이겠지만 영화에서는 (영국 빅토리아시대의) 하류층 사람처럼 행동한다. 박사장네는 상류층으로 나오지만 (사회적 지탄을 받는 그런) 극상류층 사람들은 절대 아니다. 감히 남의 둥우리를 차지한 이들은 저택의 숨겨진 지하비밀방에서 또 다른 계층의 사람을 마주치게 된다. 비 오는 날 밤 가면을 벗고 각자의 세계를 지배한 벌거숭이 냄새를 풍기게 된다.
똑같은 흑백세상
흑백의 영화는 최민식의 흑백사진을 보듯이 번들거리는 민낯의 땀 냄새와 고달픈 속내를 영광스럽게 보여준다. 반지하 창틀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 풍경과 물난리가 난 그들의 세상은 더욱 처량하고, 서글프다. 컬러가 상실된 세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마도, 교활한 그들의 복숭아 때문에 문광이 내뱉은 핏자국인지도 모른다. 기택이 굳이 쓰레기통에서 꺼낸 수건 말이다. 흑백의 <기생충>은 기택네 가족의 범죄에 희생당한 박 사장네와 그들보다 못한 삶을 살아간 문광-근세 부부의 삶을 영원히 봉인할 듯하다. 죽은 사람은 억울할 것이고, 살아남은 사람은 악몽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들은 두 번 다시는 그 자리, 그런 소박한 행복을 찾지 못할 것이다.
<기생충>의 흑백부활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봉준호 미학의 또 다른 경험이다.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가 다시 한 번 묵직한 충격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오래 전, CNN를 세운 터너 회장이 개인적인 취향으로 오래된 걸작 영화들을 컬러로 변환시킨 적이 있다. 왕년의 클래식 흑백영화들에 알록달록 색깔을 더하면 더 감동적일까? 영화팬들은 어이없는 컬러판 <카사블랑카>에 실망을 넘어 분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생충>은 인디안 분장을 한 기태의 표정에 담긴 분노를 넘어 그가 산 반지하의 퀴퀴함과, 그가 탔을 심야의 지하철의 분위기와 맡은 듯 만 듯한 서민의 체취를 여실히 담아낸다. 흑백판 <기생충>은 마스크를 꼭 쓰고 봐야할 필견의 영화이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영화 '기생충 흑백판' 스틸/ 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