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휘 감독의 스릴러 <그녀가 죽었다>는 TV뉴스와 함께 시작된다. 정부가 골목길 CCTV 설치를 확대하려고 한다면서 인권단체가 사생활침해가 우려된다는 이야기까지 전한다. 그러면서 CCTV와 범죄예방의 효과의 연관성을 살펴보겠다고 한다. 이 정도면 제목과 관련하여 답이 나올 듯하다. 늦은 밤, 한 젊은 여자가 인적 드문 골목길로 귀가를 서두르고 있다. 그 앞에 누군가 나타나면? 모자를 섰거나, 검은 옷이거나, 50대 남자라면? 사건뉴스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온 장면이다. 아니, 2000년대부터 충무로 영화에서 항상 등장하는 범죄 신이다. <그녀는 죽었다>는 영화 시작부터 이 영화가 범죄물이며, ‘자신의 공간’에서 안전을 위협받는 스릴러임을 예고한다.
구정태는 공인중개사이다. 집을 내놓거나 집을 찾는 고객을 성심성의껏 매칭을 시켜주는 것을 보람으로 여긴다. 이런 중개업은 평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최선을 다한다. 지나치게! 고객이 맡긴 스마트키로 빈 집에 들어가서는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주인 없는 빈 집에서 하자가 발견되면 고치는 서비스 정신까지 있다. 폴로라이드로 인증 샷도 찍고, 나오면서 기념품도 하나 챙긴다. 변태는 아니지만 변태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소라는 소셜미디어의 인플루엔서이다. 처음에는 평범하다. 명품백, 쇼핑,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화려한 삶을 과시한다. 비록 편의점에서 핫바를 먹더라도 SNS에는 ‘비건이에요~’란다. SNS에서는 ‘좋아요’와 ‘댓글’이 중요하다. 한소라는 유기견과 유기묘를 챙겨주는 콘텐츠로 자신의 평판을 제고시키고 있다. 이제부터 훔쳐보기 좋아하는 그 남자가 보여주기 좋아하는 이 여자에 급관심을 보이고, 결국 남자는 그 여자의 집으로 침입한다.
<그녀는 죽었다>는 주인공의 정체성이 중요하다. 친절한 남자는 피핑 톰이고, 자애로운 여자는 관종이다. 평판과 명성을 위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고, 끝없이 자신의 처지와 선택에 대해 항변한다. 자기변명과 자기합리화는 결국 ‘살인의 현장’으로 변한다. 이제부터 영화는 히치콕 스타일의 누명 쓴 남자와 전형적 악녀의 게임이 시작된다. 나쁜 사람을 찾아 처단하는 구조가 아니라, 일단 누명 쓴 사람, 혹은 손가락질 받는 사람의 억울함을 푸는 것이 우선이다. 그 과정에서 기능적인 형사가 등장한다. 오영주는 남성위주의 형사팀에서 겉도는 인물이라는 또 다른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은 잊지 않는다.
영화 <그녀는 죽었다>는 변요한과 신혜선 배우가 만나면서 점층하는 긴장감, 막판에 휘몰아치는 섬뜩한 대결구도가 신예 김세휘 감독의 세심한 연출로 완성된다. 임팩트 있는 캐릭터와 사건이 속도감 있게 펼쳐지기에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 극장 문을 나서며 이야기를 복기해 보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당연히 훔쳐보는 것은 죄이며, 스토커의 욕망은 비극으로 이어진다는 것. 그리고, SNS는 자신의 불행한 과거를 완벽하게 세탁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한소라는 SNS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팔로워의 관심은 “몸매관리는 어떻게 하세요?”수준이란 것이 마지막 한 방이다. 신예 김세휘 감독은 일상화된 SNS 현실의 어두운 면과 인간 심리의 은밀한 속을 효율적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그녀가 죽었다 ▶감독/각본: 김세휘 ▶출연: 변요한, 신혜선, 이엘, 윤병희, 박예니, 심달기, 박명훈 ▶제작:엔진필름 ▶개봉:2024년5월15일/15세이상관람가/10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