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1일,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년)로 시작된 KBS 1TV <한국영화 100년 더 클래식>이 오늘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년)를 마지막으로 그 화려한 막을 내린다. 100년 전, 1919년 10월 당시 단성사에서 선보인 <의리적 구토>가 최초의 한국영화로 사료된다. 이날을 기념하여 KBS는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지난 100년을 빛낸 한국영화 12편을 매주 금요일 방송해 왔다. 196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영화의 품격을 높인 영화들이 늦은 밤 영화팬을 매료시켰다. 때로는 당국과의 마찰 속에서, 제작현장의 고충 속에서 묵묵히 한국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온 영화인에게 경배를 올린다.
오늘 방송되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단편 <우중산책>으로 주목받은 임순례 감독이 <세 친구>(1996)에 이어 내놓은 작품이다. <세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도 못한 세 친구가 ‘희망도 없이’ 방황하는 암울한 청년의 현실을 그렸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아마 그들의 20년 후의 삶을 그린 듯 우울하다.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남성 4인조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불경기로 인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출장 밴드를 전전한다. 팀의 리더 성우(이얼)는 고교 졸업 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고향, 수안보의 와이키키 호텔에 일자리를 얻어 팀원들과 내려온다. 음악에 대한 야심보다는 지금 당장의 삶이 더 고달픈 이들의 이야기가 힘겹게 펼쳐진다. 학창 시절 무대 위에 맘껏 소리 샤우팅하던 꿈과 사랑과 희망의 순간은 아득하게 사라지고, 남은 것은 의기소침, 내일이 없는 출장밴드의 그림자이다.
최근 <82년생 김지영>에서 친정아버지로 나왔던 이얼과 박원상, 황정민, 오광록의 ‘현실적’ 신인 때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전해에 개봉되었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류승범도 만나볼 수 있다. 박해일은 이얼의 고등학교 시절을 연기한다. 임순례 감독은 지방 나이트클럽의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공을 들인다. 그래서 너훈아, 나윤아, 이엉자 같은 ‘나이트클럽 아이콘’도 만날 수 있다.
임순례 감독의 놀라운 연출력, 캐릭터를 대하는 태도는 이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근 20년 전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처음 봤을 때와는 또 다른 감흥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음악을 하는 환경이,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사람이 한데 어울리는 이유 등이 그동안 많이 바뀌었겠지만, 무엇보다 삶이란 그렇게 무겁게, 덧없이, 그러나 진중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관객들도 세월과 함께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영화 100년 더 클래식>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전혀 아깝지 않은 한국영화 걸작이다. 28일(토) 00:10분 KBS 1TV 방송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스틸/ 명필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