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시작되는 지난 9일(금) 공개된 넷플릭스 8부작 오리지널 <살인자ㅇ난감>이 연휴를 지나면서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개봉 전부터 이 작품에 대한 입소문이 있었지만 그것은 주로 원작 웹툰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개되고 나서는 우선은 ‘작품’ 때문에, 그리고 극중 한 인물 때문에 더 이슈가 되었다. 우선은 작품을 작품으로 보자.
웹툰 <살인자ㅇ난감>은 노마비(스토리)와 꼬마비(작화)가 2010년부터 네이버웹툰에 연재했던 작품이다. 군대 다녀온 20대 복학생 ‘이탕’은 그다지 미래가 없다. 집을 나와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며, 학교도 다니는 둥 마는 둥,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하고 있다. 밤에 술 취한 진상을 상대해야하는 고달픈 청춘이다. 어느 날 ‘밤’ 그런 진상과 하마터면 큰일 치를 뻔한 이탕은 집으로 돌아가는 중 그 남자를 다시 만난다. 언쟁은 드잡이로, 그리고 몸싸움이 시작되고 이탕은 손에 든 망치를 휘두른다. 그 남자가 쓰러진다. 난감하다. 군에서도,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배운 적 없는 ‘뜻밖의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그렇게 이탕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된다.
웹툰 <살인자ㅇ난감>이 인기를 끈 것은 주인공 ‘이탕’의 드라마틱한 인생 때문이다. ‘오대수’같은 청춘이 어쩌다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곧 잡혀서 인생 종칠 것’이라는 불안감에 영혼을 잠식한다 그를 뒤쫓는 것은 엄청난 수사 촉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형사 ‘장난감’이다. 그런데, 또 다른 복병이 있다. 살인현장을 목격했을 수도 있는 여인(정이서)과 개(맹도견)이다. ‘죄책감’과 ‘불안감’의 이탕은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르면 조금 더 대범해지고, 또 다른 조력자를 만나면서 어느새 불안한 살인자에서 용감한 처단자로 거듭나게 된다. 적어도 들통 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영화는 ‘자경단’ 수준의 다크히어로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어설프게 시작하는 ‘모범택시’ 속 기사 같다. 영화를 보면서 인간 이탕의 심리적 변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원래 ‘처단자’(악인)인가, 예정된 ‘정의의 투사’인가. 그의 살인행각을 변호할 유일한 근거는 “그놈들은 죽어 마땅한 놈들!”이라는 비법률적인 응원뿐이다. 그들이 아무리 사악하고, 지저분하고, 쓰레기 같고, 악마 같은 짓거리를 했어도 말이다. 어떤 일? 학교폭력, 연쇄살인, 성폭행, 존속살인 등등. 그들이 법의 심판을 제대로 받을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누군가가 나서서 ‘사적인’ 응징해 준다면 박수를 보낼 것이다. (적어도, ‘영화’라는 도구를 통해서 말이다)
웹툰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오면서 변화가 있다. 캐릭터와 사건들이 조금씩 각색된다. 살인의 과정이나 강도/수위가 적절히 톤다운 된다. 갈수록 흉포해지고, 잔인해지는 OTT 경향상 조금은 특별한 셈이다. (예를 들어 맹도견 ‘렉스’는 단지 핏자국을 깨끗이 핥아 증거를 남기지 않는 순한 크라임신이 된다)
<살인자ㅇ난감>은 캐릭터의 승리이다. 최우식이 연기하는 이탕은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꿈꾸는 나른한 청춘에서 어쩌다가 망치를 들고 정의를 실현하는 ‘쾌걸 조로’가 되어 버린다. 손석구가 연기하는 형사 장난감은 이탕보다 훨씬 서사가 복잡하고, 레이어가 두텁다. 풍선껌만으로는 속내를 감출 수가 없다. 그리고 이희준의 송춘은 이탕이 주저할 때, 장난감이 외면할 때 기꺼이 나서서 악당을 처단해 준다. 물론, 이들의 공통점은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하지도, 주장하지도 않는다. 단지, 하다 보니, 혹은 해야 할 것 같은 나름의 소명감에 사로잡힌다. 김요한의 노빈은 그런 뚜렷한 세 주인공의 틈바구니에서 사이드킥의 존재감을 충분히 보여준다.
<살인자ㅇ난감>을 다 보고 나면 이창희 감독의 <살인자ㅇ난감>은 주연급 배우들뿐만 아니라 조연급, 단역, 하다못해 렉스까지 다들 적재적소에서 최상의 연기를 보여준 것 같다. 다들 너무 잘해주어 ‘형 회장’ 같이 스치고 지나갈 인물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여하튼 필리핀에서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온 이탕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열려있을 것 같다. 적어도 이름으로 봐서는. “탕! 탕!”
그리고, 혹시나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초밥’보다는 ‘죄와 벌’의 용도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한다. 단지 ‘모기’ 한 마리를 잡으려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집어든 것은 아닐 것이니.
▶살인자ㅇ난감 ▶영어제목: KILLER PARADOX ▶감독: 이창희 ▶극본:김다민 ▶출연: 최우식(이탕) 손석구(장난감) 이희준(송춘) 김요한(로빈) 권다함(용재) 현봉식(박형사) 정이서(선여옥) 조현우(여부일) 노재원(하상민) 임세주(최경아) 이중옥(강상묵) 이소원(연서) 이주원(장갑수,난감父), 오혜원(이유정) ▶제작사:쇼박스,렛츠필름 ▶공개:2024년 2월 9일/8부작(425분)/청소년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