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가족', '반칙왕', '놈놈놈', '밀정', 그리고 최근 애플tv+의 '브레인'을 거치며 자신의 영화미학을 확고히 구축하고 있는 김지운 감독이 1970년대 충무로 영화감독의 심정으로 '걸작' 부활에 나선다. 27일 개봉하는 영화 '거미집'이다.
14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는 영화 '거미집'의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영화 상영이 끝난 뒤 김지운 감독과 배우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박정수, 장영남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영화 [거미집]은 화려했던 데뷔작으로 뒤로 하고 싸구려 치정극 전문이라는 혹평에 시달리는 영화감독 김열(송강호)이 악몽에 시달리다가 비장의 승부수를 던지면서 진행되는 좌충우돌 왁자지껄 소동극이다. 김 감독은 자신이 최근 다 찍은 '싸구려 치정극'의 후반부만 조금 고쳐서 다시 찍으면 필생의 걸작이 될 것이라며 영화사 대표(장영남)을 구슬린다.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당시는 문공부의 시퍼런 검열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고, 주연배우는 하나같이 콧대 높거나, 제 정신이 아니다. 그렇게 '신성스튜디오'에 걸작을 만들려는 감독과 바뀐 시나리오를 이해조차 하지 못한 채 연기하는 배우들, 스튜디오 사람들, 그리고 검열관들이 모여 저마다의 영화열정을 활활 불태운다.
영화는 1970년대 충무로 환경을 알면 더 재밌는 영화이다. 분명 신상옥 감독의 신필림의 유산이 넘쳐나고, 김기영 감독 등 당대를 주름잡던 작가주의 영화감독의 숨결이 살아 숨 쉰다. 물론, 유신정권의 악랄한 검열제도도 영화의 묘미를 더한다. 그리고, 당연히 스크린의 대중스타들이 펼치는 은밀한 스캔들은 예나 지금이나 대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영화감독 김열을 연기한 송강호는 "김열 감독은 자신의 욕망으로 배우들을 다시 스튜디오로 다시 불러들인다. 그가 바꾸고 싶어한 결말은 김 감독 입장에선 도발적이고 도전적이다. 김 감독의 욕망 때문에 모여서 좌충우돌을 겪고, 수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결말을 만든다"라며 "또 영화 속 영화의 배우들은 모두 욕망으로 허우적거린다. 이 세상 사람들의 지독한 우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에 영화 속 영화를 바라보는 김 감독의 관점, 표정도 사실은 정답이 없다. 보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볼 때마다 달랐던 것 같다. 지독한 메타포가 가득한 영화라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김지운 감독은 극중 김열 감독이 바꾸려고 한 결말에 대해 "김 감독이 이미 만들어 놓은 영화 '거미집'은 현모양처, 순애보를 다뤘는데 더 강렬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이고 투쟁적인 여성을 담아 영화의 결말을 바꾸려 한다. 그래서 치정 멜로에서 스릴러, 호러로 변한다. 구태의연하고 뻔한 것을 뒤집고 새로운 인물상과 영화적 비전을 보여주려 하고, 자기 세계를 뒤집어 새로운 것을 끌어내려고 하는 욕망이 담겼다"고 밝혔다.
바람둥이 톱스타 강호세 역의 오정세는 "강호세는 바뀌기 전이나 후나 크게 관심이 없다. 감독이 시키는 대로 하는 인물이 다. 사랑에 눈이 멈 인물이고, 그의 욕망 때문에 걸작이 만드는 과정에 걸림돌이 된다. 마지막엔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랑이 아니고, 옆에 있던 아내에 대한 생각을 조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걸작보다는 제 안에서의 생각이 많았던 인물인 것 같다"라고 전했다. 오정세의 아내 역으로 염혜란이 후반부에 깜짝 등장한다.
극중에서 70년대 스타일의 영화를 찍은 임수정, 오정세, 정수정은 당시의 대사 톤으로 연기를 펼친다. 정수정은 "그 당시 말투를 전혀 모르고 대본을 접했다. 한 번도 안 해본 거라 처음엔 당황했다. 감독님의 시범을 보고 확실히 감은 얻었다. 유튜브를 많이 찾아봤고, 현장에서 다들 그렇게 연기 하니까 자연스럽게 되더라"고 밝혔다. 임수정은 "그 시대 톤으로 배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또한 흑백 영화 안에 배우로서 제가 담길 수 있다는 것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전여빈은 신성필림의 후계자 신미도 역을 연기한다. 김 감독의 시나리오를 본 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화제작에 열정을 보인다. "촬영 현장을 더 거시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며 "이 작품은 영화 속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각자가 갖고 있는 크고 작은 욕망이 뒤엉키는 템포감 있는 작품이다. 이 리듬을 많이 즐겨 달라"고 말했다.
한편 이 작품 최고의 카미오는 정우성이었다. 정우성은 고인이 된 신 감독으로 등장한다.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 이후 정우성을 다시 만난 송강호는 "이번에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 때 정우성이 다른 영화 촬영 중이었는데 한달음에 달려와서 열정적으로 연기했다. 고맙고 감동적이었다."라며 "'밀정' 때는 이병헌이 그런 역할을 해줬다. 두 분의 영화에 기회가 되면 신세를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김지운 감독의 김열 감독의 영화열정과 관련하여 "'반칙왕'과 '달콤한 인생', '장화홍련' 리마스터링 작업을 하면서 얼마나 집요하고 혹독하게 찍었는지 스스로 느꼈다. '놈.놈.놈' 촬영 때 대규모 폭발신이 있었다. 폭발하고 나서 다들 달려가서 불을 끄는데, 나는 촬영감독에게 '잘 찍혔지?'라는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 순간 광기인가 싶었다. 그런 에너지는 어렵게 찍을수록 필름에 서려 있다고 생각한다. 저의 힘이 되고 영화적인 믿음이 됐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70년대 충무로 검열과 관련하여 "그 시대를 접하지 못하고 궁금한 이들에게, 영화를 만드는 집단을 통해서 재미있는 이야기와 시대 풍자를 즐길 수 있게 한다."고 밝혔다. 김지운 감독은 "미국 영화처럼 앙상블 코미디를 하고 싶었다. 연기 달인, 연기 장인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을 보고 재미있는 장르라는 걸 '거미집'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앙상블 코미디가 가진 재미를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라고 '거미집' 만의 강점을 전했다.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박정수, 전여빈, 정수정, 장영남이 걸작을 만들기 위해 김지운 감독의 가혹한(!) 디렉션을 견뎌낸 영화 '거미집'은 오는 9월 27일 개봉한다.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