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오전. 그 때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시나요. 나는 기억을 한다. 가창력이 아주 뛰어난 한 가수의 음반 발매를 앞두고 열리는 간담회 장소로 가기 위해 여의도에서 서강대교를 택시로 건너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속보로 “무사하다”는 뉴스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그 가수의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지만, 그 가수의 신보 발매는 연기되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그날을 다양한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김애란 작가의 단편선 <바깥은 여름>에 수록된 단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그날을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아니, 그 사람을 영원히 잊지 못해 슬퍼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소년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아파트 우편함에 편지를 넣는다. 그 아파트에는 명지(박하선)가 살고 있다. 명지는 빨갛게 김치를 담그다 전화를 받는다. “예, 제가 권도경 선생님 아내인데요” 그리고 병원에서 남편의 주검을 확인한다. 남편은 학생을 구하려다가 함께 죽었다는 것이다. 남편의 손가락에는 반지가 있다. 명지는 오열한다.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그렇게 남편을 떠나보내고 슬픔에 빠진 명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에서 잠깐 언급되던 ‘그 학생’의 이야기가 영화에서 확장된다. 그 학생, 지용의 남겨진 가족의 이야기를 함께 전한다. 비극을 마주하고, 끝없는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
김애란 작가의 소설은 문학이 가지는 힘을 느낄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도 된다.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테니. 하지만 당사자는 슬픔을 꾹꾹 누르고, 어떻게든 떨치려고 한다. 저 멀리(소설에서는 영국 에딘버러) 떠나지만 몸에 생긴 피부 반점(장미색 비강진)처럼 여전히 고통스럽다.
김희정 감독의 전작 <프랑스여자>에서는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이야기가 나온다. 글로벌 시대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도 ‘나비의 펄럭임’처럼 우리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친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러하다. 감독은 거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미니멀하게 전해주려고 한다. 사고 뒤편의 이야기, 남겨진 사람의 개인적 슬픔을 말한다. 명지는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 쪼그려 앉아 남편을 떠올리며 슬픔에 젖어있다. 그 시간에 지용의 친구, 해수는 지용의 남겨진 가족인 누나 지은을 만나기 위해, 슬픔을 조금이라도 들어주기 위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달린다.
제목으로 쓰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 ‘시리’에게 실없는 질문을 던지듯 명지가 정처 없이 질문을 던지자 시리가 답한 것이다. 시리는, 빅스비는 표준답안을 인정머리 없이 무미건조하게 던져줄 것이다.
다시, ‘2014년 4월 16일’ 가라앉는 그 배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다. 선생님은 아마 난간에 매달려 학생의 손을 꼭 잡고 있었을지 모른다. 동생 소식에 한동안 몸이 마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누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겨우 편지를 쓴다. 삐뚤삐뚤. “겁이 많은 지용이가 마지막으로 움켜진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선생님의 손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놓여요.”라고.
그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가면서, 선생님이 학생에게, 어린 제자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다. 비극의 현장에 그런 어른이 있었다. 이 영화는 그 따뜻한 손을, 마음, 숭고한 희생정신을 이야기한다. 그런 어른들이 이 세상에 있다면 아주 좋은 것이다. 아니 좋을 것이다.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오늘(5일) 개봉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감독/각본:김희정 ▶출연:박하선, 김남희, 전석호, 문우진, 김정철, 정민주 ▶개봉:2023년 7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