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KBS 독립영화관’이 정상(!)적으로 방송되기 시작했다. 오늘밤 <독립영화관>시간에는 꽤 의미 있는 독립영화 한 편이 영화 팬을 찾을 예정이다. 중국과 대만의 독립 다큐멘터리스트가 만든 <플라스틱 차이나>(감독: 왕지우랑 원제: 塑料王國, Plastic China)이다. 작년 선댄스키드 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면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 오늘도 ‘분리수거’를 기꺼이 한 지구인이라면 이 작품을 꼭 보시길 바란다.
작품은 ‘분리 수거된 쓰레기’의 종착역을 보여준다. 깡통, 종이, 비닐, 플라스틱류로 분리수거된 그 쓰레기들은 어디로 갈까. 막연하게 재처리공장에서 부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분리공장에서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가운데 노동자들이 덜 분리된,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를 고르고 있을 것이다. 여기 그런 현장이 있다. 바로 중국이다! 과연 컨베이어 벨트가 있을까?
중국은 자기들 나라에서 쏟아지는 폐플라스틱과 함께, 전 세계에서 엄청난 규모의 쓰레기를 수입한다. <플라스틱 차이나>에서는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에서 컨테이너로 배달된 그들의 운명을 보여준다.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은 산동성의 한적한 시골마을로 향한다. 그런데 그 광활한 중국의 이 한적한 시골마을은 소, 닭을 키우고 농사를 짓는 촌이 아니다. 엄청난 폐플라스틱 더미에서 재활용산업을 가내수공업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작품에는 왕쿤(王坤) 사장의 패밀리 비즈니스를 보여준다. 왕씨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사천성에서 여기까지 흘러온 펑원위앤(彭文遠)이 유일한 직원이다. 물론 그들의 아내와 어린 아이들도 노동에 투입된다. 보면서 놀라게 된다. 이들은 하루 종일 쓰레기(폐자재) 더미를 뒤지고, 정리하고, 분리하고, 기계에 넣어 돌리고, 잘게 쓴다. 그리고 커다란 화덕에서 용해시키더니 쓰레기조각을 국수 면발 뽑듯이 정제된 플라스틱 알갱이를 만든다. 그걸 커다란 포대에 넣어 ‘원재료’로 판매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자연스런 자원의 재활용이지만 작품에서 보여주는 영상은 끔찍하다. 플라스틱 덩어리에 불을 붙여 그걸로 밥을 해먹는다. 맨손으로 (정체불명의) 쓰레기 더미를 하루 종일 뒤진다. 패밀리 비즈니스이다. 11살 난 어린 딸도 그 속에서 뒹군다. 분명 더 어린 나이 때부터 그러했을 것이다. (그 쓰레기 더미의 한 쪽 공간에서 아이를 낳은 장면도 나온다!) 천둥벌거숭이로 그 속에서 자란다. 어른도 아이도 습관적으로 몸을 긁는다. 왜 긁는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이걸 ‘환경보호의 역습’이나, ‘플라스틱활용의 비극’으로만 본다면 끔찍하다. 차라리 열악한 상황에서도 굳세게 살려는 중국인민의 의지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속이 편할지 모르겠다. 가난하지만, 쓰레기더미에서 뒹굴지만 삶의 질의 향상시키려는 욕망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그 쓰레기 더미에 숨어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유일한 일꾼 펑씨는 자신의 딸을 학교에 보내고 싶지만 보낼 수 없다. 돈이 없으니!)
왕 사장은 쓰레기더미로 어렵게 번 돈으로 새 차를 산다. 펑씨는 일이 힘들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터미널에서 차표 가격을 보고는 의기소침하여 돌아선다. 아이들 교육비는 고사하고, 고향에 갈 차비조차 부족한 것이다. (매일 술을 마신다고 그러지만 술값으로 탕진할 돈도 없는 것 같다) 악덕 사장과 최저임금에 허덕이는 중국노동자가 보여주는 빈부격차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결코 아니다!!!
아름다운, 평화로운 중국의 농촌이 폐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모습에서 무엇을 생각해야할까. 그런데 지난 연말 중국이 초강력 대책을 내놓았다. 폐지, 폐플라스틱 등 ‘쓰레기 24종’에 대해 수입을 중지한 것. 이른바 환경보호를 위해 힘쓴다는 선진국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자원재활용이라는 미명’ 아래 주워 모은 폐지와 깡통, 플라스틱을 더 이상 중국에 가져다 팔 수가 없는 것이다. 부랴부랴 다른 동남아국가로 눈을 돌린단다. 또 다른 비극이다.
오늘도 우리는 일회용 컵과 택배로 배달된 각종 상품의 포장용기를 편리하고, 깔끔하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분리 수거된 후, 그 뒷이야기는 우리가 기대하는 그런 아름다운 리사이클링의 모습은 아니었다.
중국 산동성 출신의 왕지우랑(王久良) 감독은 미국에서 자원재활용 학술포럼에서 미국의 선진적인 재활용 시스템을 견학하는 기회를 가졌단다. 그 뒤 중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선진국가에서 수입한 폐자재’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직접 보고 이 다큐를 만든 것이다. 대만 제작진과 함께. (대만 금마장에서 편집상을 받았다)
지금은 상암동의 신화가 되어버린 난지도 쓰레기더미의 옛 이야기를 아시는가. 마치 인도의 쓰레기마을처럼 난지도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는 분리수거도 안하던 시절이었으니. 쓰레기더미에서 ‘쓸 만한 보물’을 찾는 것만큼 주사바늘이나 유리조각에 찔리고 병균에 옮는 일이 많았다는 그런 이야기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플라스틱 차이나>는 단지 더러운 쓰레기더미의 중국이야기가 아니다. 지구인이 오늘도 몰래 카펫 밑에 집어넣은 오물의 이야기이다. 궁금해서 배경이 된 산동성의 웨이팡을 찾아봤다. 인구 935만의 거대도시였다. 중국은 참 크다. ‘평창동계올림픽 하이라이트’가 끝난 뒤 밤 1시 10분에 방송된다. 꽤 늦은 시각이지만 충분히 기다려서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