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시절, 엉망진창인 조선왕실과 백성의 사는 모습을 그린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 남자>에서 조연출이었던 안태진이 감독한 <올빼미>는 인조 시절의 조선 왕실 이야기를 다룬다. 때는 바야흐로 서기 1645년, 인조23년이었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좌에 오른 인조는 명나라를 추앙하다 결국 정묘, 병자호란을 겪으면 위태롭게 권좌에서 버티던 때였다. 이제 곧 청에 잡혀있던 소현세자가 귀국한다고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조선 사대문 밖 마을 의원애서 침술사로 겨우 먹고 사는 경수(류준열)는 우연한 기회로 궁궐에 들어가게 된다. 경수는 뛰어난 의술(침술) 실력을 갖췄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다. 이제 어의 이형익(최무성)의 추천으로 조선의 왕실 로얄패밀리의 침실에도 들어가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일에 대해서 보려고도, 알려고도, 말하지도 말아야한다. 그런데, 청에서 귀국한 소현세자(김성철)를 진맥하고 얼마 뒤, 세자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는다. 어의 이형익과 달려갔다가 봐서는 안되는 것을 보게 된다. 세자가 독살당하는 광경을, 어둠 속에서. 아무도 맹인 침술사의 말을 믿지 않겠지만 말이다. 경수는 이제 조선 왕실의 운명을 좌우할지 모른다. 물론, 그 전에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소현세자를 증오하는 인조(유해진)가 자신을 목줄을 거머쥐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올빼미’에 등장하는 어의 경수는 ‘주맹증’이란 것을 앓고 있다. 주맹증은 빛이 밝게 비출 때 앞을 볼 수 없지만 어두운 밤이 되면 앞을 볼 수 있단다. 이 희한한 병 때문에 그는 어의가 되었고, 그 병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소현세자가 어떻게 독살 당하는지 똑똑히 보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 조선왕실의 불행과 비극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망해가는 명나라를 좇으며 자신의 보위를 지키기에만 몰두하는 인조. 인조의 눈에는 청의 보호를 받고, 청의 사랑을 받고, 어쩌면 청의 뜻에 따라 자신을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할지 모를 ‘친아들’ 소현세자가 눈에 가시로 보인다. ‘세자를 죽여야 왕이 산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망상인지 명료한 판단인지는 알 수가 없다.
영화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처럼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서의 귀퉁이 살짝 기재된 이야기를 충무로 스타일로 그려냈다. 기실 역사서에는 소현세자가 귀국한 뒤 두 달 뒤 어이없이 학질에 걸려 죽었다고 기록되어있다. 4월에 말이다. 소현세자의 주검은 마치 독살된 것처럼 얼굴이 검게 변했다고 한다. 과연 소현세자는 학질로 죽은 것일까, 아버지 인조에 의해 끔찍하게 독살당한 것일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목격자는 ‘맹인’이다.
세자의 죽음은 결국 유해진이 연기한 인조의 권력욕에 기인한다. 영화는 영리하게 왕의 권력욕에 많은 역사적 배경을 녹여낸다. 명과 청에 대한 조선의 대처법은 ‘원모심려’하지 못하고, 권좌까지 끌어올려준 세력가(문무대신)들은 가문의 영광이 우선일 따름이다. 그런 엄청난 권력놀이에서 맹인 목격자의 역할이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세자도 죽고, 세자비도 죽고, 그 가족, 친족들이 줄줄이 목이 달아나고, 유배당하는 불균형 게임에서는 말이다. 그래도 역사의 강물은 도도히 흐른다. 인조는 청의 칼날에, 맹인 침술사의 침에, 강빈의 원귀에 죽은 것도 아니니 말이다.
충무로 시나리오 작가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작법>을 배울 것이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 세익스피어까지 탐독한다면, 무궁무진한 인간의 희로애락, 욕망과 영광, 그리고 어이없는 몰락의 광경을 계속 만나보게 할 것이다.
▶올빼미 ▶감독:안태진 ▶출연:류준열(소현세자) 유해진(인조) 최무성(이형익) 조성하(최대감) 김성철(소현세자) 안은진(소용 조씨) 조윤서(강빈) ▶2022년11월23일 개봉/118분/15세관람가
[사진=NEW/씨제스엔터테인먼트/영화사 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