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우 감독이 <해피엔드> 이후 18년 만에 배우 최민식과 재회한 <침묵>은 중국 영화 <침묵의 목격자>를 리메이크한 법정 멜로 드라마이다. 재력과 권력을 모두 가진 기업가 임태산(최민식)은 약혼녀인 톱스타 유나(이하늬)가 살해당하고, 자신의 딸 미라(이수경)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 아버지는 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거대한 법정 드라마를 설계하며 변호사 희정(박신혜)과 검사 승길(박해준) 사이에서 치밀한 게임을 벌인다.
영화는 법정극 특유의 긴장감 위에 중년 남성의 번뇌와 절절한 부성애를 겹쳐 놓는다. 성공만을 향해 달렸던 임태산의 자아성찰은 딸을 위한 희생이라는 형태로 발현되며, 류준열과 조한철 등 연기파 배우들이 배치되어 극의 밀도를 더한다. 정지우 감독은 원작의 정서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가진 묵직한 아우라를 통해 한 남자의 복잡미묘한 감정선을 유려하게 그려냈다.
원작의 제목인 <전민목격>(全民目擊)이 '모두가 지켜보았다'는 현상을 강조했다면, 한국판 제목 <침묵>은 그 드러난 현상 너머의 진실을 대하는 태도를 내포한다. 관객은 영화 후반부 임태산이 보여주는 침묵의 표정을 통해 그가 감추고자 했던 진심과 마주하게 된다. "내 딸을 위해 보게 된 것에 대해 침묵해달라"는 애절한 부탁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긴 여운을 남기며 관객을 '침묵의 대열'에 동참시킨다.
태국의 이국적인 풍광 속에서 울려 퍼지는 이태리 가곡 '까로 미오 벤(Caro mio ben)'의 선율은 비극적인 상황과 대비되어 더욱 처연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침묵>은 반전을 쫓는 스릴러의 쾌감보다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한 남자의 고독한 선택에 집중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결국 진실이란 말의 성찬이 아닌, 끝내 삼켜야만 했던 침묵 속에 존재함을 영화는 묵묵히 증명한다.ⓒKBS미디어 박재환.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