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모두 242편의 장단편 영화가 상영되었다. 그중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섹션에서 소개된 <비닐하우스>(감독:이솔희)는 한국영화계의 미래를 책임질 신인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는 무겁고, 어둡고, 비극적이지만 그 무게만큼 한국영화의 미래를 밝게 비춘다.
주인공 문정의 삶은 ‘불행’하고 ‘우울’하다. 남편은 죽고 아들은 소년원에 가 있고, 자신은 지금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다. 아들이 소년원을 나오면 같이 살 ‘번듯한’ 집을 구하고 싶어한다. 그는 지금 요양보호사로 한 노부부를 돌보고 있다. 할아버지는 매사에 예의바르고 친절하지만 시력을 잃었고 할머니는 치매이다. 문정은 자기 부모도 그렇게는 모시지 못할 만큼 성심껏 돌본다. ‘불행하고도 우울한’ 문정은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짬을 내어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그곳에서 순남이란 여자를 만난다. 순남도 자기 못지않게 ‘불행하고 우울한’ 형편이다. 문정은 순남에게 친절을 베풀고, 어른답게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해준다. 문정의 삶은 어느 날 갑자기 비극적 결말로 치닫게 된다. 돌보던 할머니를 밀치다 죽게 되고, 문정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이제 문정을 둘러싼 사람들이 그 ‘선택’의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비닐하우스’에서는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를 만나게 된다. 문정을 연기한 김서형은 그야말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다. ‘문정’ 캐릭터는 의기소침하고, 방어적이며, 절망감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의도치 않은 돌발사건으로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는 인물을 놀랍도록 섬세하고, 차갑게 연기해 낸다. 김서형은 시종일관 어눌한 말투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운명에 어쩔 수 없이 맞선다. 순간순간 침몰하던 김서형이 폭발하는 순간이 있다. 모든 상황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듯 자신의 뺨을 치는 그 모습은 일반적 심리의 폭력감을 넘어선다. 김서형만큼이나 안소요(순남)의 연기도 빛을 발한다. 순남이란 존재도 ‘보호받지 못한’ 상황에 내몰리면서 수동적인 인물이 되어버린 인물이다. 가정폭력과 어쩌면 성적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여성을 상징한다. 어쩌면 순남은 문정의 과거이며, 미래일 것이다.
문정은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미래를 만들려하지만 상황은 비극적이다. 치매 걸린 엄마도, 노부부도, 심리상담 받는 사람들도, 그리고, 소년원의 아들까지. 모두들 자신의 선한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것이 비극으로 엇나가는 고통스러운 영화가 바로 <비닐하우스>이다. 이솔희 감독은 이 무거운 영화를 날카롭게, 묵직하게, 차갑게, 스산하게 밀고 나간다. 남은 것은 아마 휑하게 불타버린 비닐하우스일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삶의 무게여.
▶감독/각본:이솔희 촬영:형바우 ▶출연: 김서형, 양재성, 신연수, 원미원, 안소요, 황정민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