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개봉된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은 ‘신파 논쟁’에 그치고 말 가벼운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의외도 많은 이슈를 안고 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나 ‘다수의 안전을 위한 (극)소수의 희생’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우리와 같지 않은 존재’에 대해 배척하려고 하는 이기적 집단주의에 대한 고찰이다.
영화는 그랜드호텔 식 인물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인천공항을 떠나 하와이 호놀룰루로 향하는 KI501편에 탑승한 100여 명의 승객과 그 비행기의 안전운항을 책임진 승무원들, 그리고 땅에 있는 가족 친지들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등장부터 심상찮은, 사이코 같은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는 임시완은 기어이 그 비행기에 타려고 한다. 이병헌은 아토피를 앓는 딸과 함께 하와이에서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한다. 모든 승객들은 그들처럼 제각기 다른 목적과 부푼 꿈을 안고 그 비행기에 오른다. 그런데, 한순간 그 비행기는 치명적 바이러스가 서서히, 급속도로 퍼지는 죽음의 공간이 된다. 이제 그 비행기는 하와이 공항에 신속히 도착하여 미국의 뛰어난 의료기술이나 방역시스템을 경험하든지, 급속히 서울로 회항하여 이 땅의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해야할 것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의 절반이 보여주는 긴박감 넘치는 상황전개를 칭찬한다. 군더더기 없이 탑승객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적으로 비행기 속 임시완과 지상의 송강호가 보여주는 ‘잘못된 방향’의 긴박감을 만끽할 수 있다. 차곡차곡 쌓이는 감정선은 한순간 폭발하게 된다. 그리고 테러에 대한 대처, 미지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이 익숙한 논쟁과 편 가르기를 가속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국토부장관을 연기하는 전도연이 말하는 “누가 책임을 집니까?”일 것이다. 관료주의 사회가 아니더라도 우리 앞에 던져진 폭탄 앞에 누가 감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고 나설 수 있을까. 그 끝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 앞에서 말이다. 그래서 쉽게 손가락질은 할 수 있겠지만 ‘감성’은 ‘이성’ 앞에, 혹은 ‘잔인한 결단’ 앞에 무릎을 꿇는다.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은 이병헌과의 악연이 있는 김남길이 조종실에서 나누는 대사이다. 김남길의 경우처럼, 사고가 있고 희생자가 있으면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 의도하지 않은 재난, 나약하고 겁 많은 인간
이 영화의 감정선은 결국 이병헌과 그의 딸이 책임진다. 아토피 때문에 고통 받은 사람은 자신이지만 ‘친구들이 피해를 볼까’ 먼저 피한다. 기내에서 급박한 상황에서도 “아빠, 우리가 뒷좌석으로 가요.”라더니, 마지막 순간에는 “아빠, 우리 돌아가지 말아요”란다. 끝까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런 딸의 마음을 아는 이병헌은 이 끔찍하고 두려운 상황에서 묵직한 한방을 던진다. 이해한다고, 원망하지 않는다고. “아무도 원하지 않았고, 의도하지 않은 재난에 휩쓸린 것뿐이라고, 나약하고 겁 많은 인간”이라고.
관객들은 단순하게 미국도, 일본도, 한국도 모두가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과학적인 이유’를 안다. ‘정부’는 국민을 위한다면서 때로는 다수의 국민의 행복을 선택한다. 한줌도 안 되는 비행기 승객을 희생해서 더 많은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논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를 온통 공포로 몰아넣을 때, 지구촌 수많은 곳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자기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서는일이 벌어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에게도 그런 장벽이 있었다) 어쩌면 그런 광경은 더 확대될 수 있다. ‘비행기’에는 한국인만 있지 않을 테니 국제적인 논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난민의 또 다른 버전이 될 것이다. 각 나라가 빗장을 걸어잠그고, 운없는 사람들은 정처없이 하늘을 떠도는 난민신세가 된다. 각기 여러 가지 이유로, 판단으로, 근거로 우리 영역의 안전을 최우선 고려상황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재난이 크든 작든, 희생이 많든 적든, 그 비극이 내 주위이든 아니든, 누군가가 희생하고, 누군가가 앞장섰기에 이나마 나약하고 겁많은 인간들은 살아남은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하더라도, 실제 재난에 준하는 상황에 대한 대처 방안은 강구해야할 것이다. 물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여객기를 납치하여 무역센터를 들이받을 줄을(911테러), 임시완이 그런 사이코일 줄을 말이다.
▶비상선언 (EMERGENCY DECLARATION) 감독: 한재림 출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2022년 8월 3일 개봉 12세관람가/ ▶제작:(주)매그넘나인 배급:쇼박스
[사진=매그넘나인/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