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5세대 감독’에서 아직도 작품을 발표하는 사람은 장예모(장이머우)와 진개가(천카이거)이다. 그중 장예모의 창작열은 대단하다. <붉은 수수밭>을 거쳐 30년 동안 여전히 중국영화계의 장인으로 남아있다. <영웅>이나 <황후화>, <그레이트 월>만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그의 작품은 대부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되었다. <책상 서랍 속의 동화>, <집으로 가는 길>, <천리주단기>, <산사나무 아래>, <5일의 마중>, <삼국:무영자>가 중국영화의 깊은 유산, 장예모의 열정을 확인하게 해 준 작품이었다. 이번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중에도 그의 신작이 포함되어 있었다. <원 세컨드>(원제:一秒鐘/One Second)이다. 영화는 장예모의 영화에서,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문화대혁명’을 다룬다. 그런데, 천안문의 광기가 아니라 저 먼 (중국의) 서북지역 감숙성 오지 마을에서 펼쳐지는 ‘문혁의 그림자’를 담아낸다. 장예모의 장기인 역사적, 문학적, 그리고, 영상미학적 요소가 결합된 ‘중국현대사 콘텐츠의 결정판’이다. 그리고 ‘한국전쟁’도 배경으로 쓰인다. 아쉽게도 그 요소 때문에 한국에서는 제대로 평가받기 힘든 작품이 되어버렸다.
중국 서북지역 깐수(감숙)성, 모래바람이 휘날리는 고비사막을 한 남자가 터벅대며 마을로 들어온다. 마을극장에서 영화상영이 끝나고 모두들 집으로 돌아간 한밤이다. 이 남자는 ‘영화’를 보기 위해 불원천리들 달려온 모양이다. 그런데 그가 정작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본 영화 상영 전에 털어주는 ‘뉴스릴’(新聞簡報)’이었다. (이전에 우리나라 극장에서도 영화 상영 전 ‘대한뉴스’를 보여주었다. ‘중국뉴스’에서는 인민을 위해 헌신하는 공산당의 혁혁한 성과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보다 먼저 그 필름을 훔쳐가는 더벅머리 소녀가 있었다. 이제 그 필름통을 둘러싼 쟁탈전이 벌어진다.
영화는 조금씩 남자와 여자아이의 사연을 밝힌다. 남자는 ‘조반파’(造反派)와 싸움을 벌였고 그 때문에 노동교화소에 보내졌단다. 무슨 일인지 탈출하여 이곳까지 온 것이다. 지인이 그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가 노동교화소로 보내진 뒤 남은 딸의 소식이 있었다. ‘내가 얼마 전에 영화를 보는데 뉴스릴에서 자네 딸 얼굴을 봤어. 22호 뉴스였어.“ 딸은 이미 죽었고, 아버지는 딸의 살아있는 모습만이라도 보고 싶어 그렇게 ’마을 상영관‘을 찾아왔던 것이다.
중국 문화대혁명은 중국현대사에서 워낙 비극적인 정치운동이었다. 모택동 때문에, 홍위병들 때문에 중국의 역사, 문화, 인성은 10년 동안(1966~1976) 올스톱 되어 버렸다. 장예모의 <인생>과 진개가의 <패왕별희>에서 목도할 수 있는 광풍이었다. ‘조반파’는 ‘조반유리’(造反有理)를 부르짖는 홍위병 무리이다. 모택동의 얼토당토않은 이 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얼마나 많은 역사유물이 잿더미가 되었던가. 여하튼 아버지는 노동교화소로 하방당했고, 딸은 아버지의 원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 쳤을까.
그럼, 여자아이의 사연은? 그 여자 아이에게는 전등갓을 장식할 자투리필름이 필요했을 뿐이다. 하나뿐이 동생이 빌려온 남의 집 전등갓을 태워버렸단다. 그 구하기 힘든 필름조각을 어떻게든 훔칠 요량이었다. (당시에는 전등갓에 필름을 둘러씌우는 것이 그나마 집안장식이었던 모양이다)
‘문혁’으로 고생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여자아이의 사연이 펼쳐지면서 ‘시네마천국’ 스타일의 감성드라마가 된다. 중국역사와 인간의 문제를 자유자재로 주물럭대는 장예모 감독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한국관객에게 불편한 구석이 있다. 하필, 그날 이 동네에서 상영되는 ‘본 영화’ 때문이다. 1970년 대 초, 중국 오지에서 마을회관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날은 그야말로 축제이다. 그들은 정말 영화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같은 영화를 보고, 보고, 또 봐도 감동받고, 눈물 흘리고, 박수를 보낸다. TV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세상이었으니.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세상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거나, 비장한 군인이야기, 영웅의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성춘향’이나 ‘명량’ 같은!)
이날 상영된 영화는 ‘영웅아녀’(英雄兒女,1964)이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까지 몰렸던 국군이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으로 기사회생하여 북진을 거듭하고, 백두산에 태극기를 휘날릴 뻔 할 때 중국이 개입한다. 중국은 이제 막 대륙을 접수한 ‘건국초기’의 불안정한 때라 또다시 미국과 전면전을 치를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벌어진 전쟁의 다음 수는 아무도 모른다. 미국이 또 다시 대륙을 접수하여 공산세력을 몰살시켜버릴 것이란 공포감. 그런 순망치한의 상황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에 뛰어든 것이다. ‘영웅아녀’는 그들이 말하는 ‘항미원조전쟁’ 기간 벌어진 고지전을 극화한 작품이다. 1952년 10월에 시작된 강원도 철원, 김화의 이 고지전을 우리나라에서는 저격능선고지전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삼각고지 전투와 함께 상감령(上甘嶺)전역이라고 부른다.
모택동의 아들(모안영)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고 전사했다. 모안영의 시신은 중국이 아니라 북한(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부 열사릉원)에 묻혀있다. 북중 혈맹관계의 상징이 된 것이다. ‘영웅아녀’에서는 중국의 인민지원군이 장렬하게 싸우고 장엄하게 전사한다. 다 이유가 있는 오마쥬이다. 그런 피와 눈물과 애국과 혈맹의 클리세가 뒤범벅된 작품이니, 중국 고비사막의 백성들이 눈물과 박수와 환호를 올리지 않을 수 있으리오.
영화 <원 세컨드>는 영화 속 영화 - 수백 번 상영되어 빛이 바랜 필름 ‘영웅아녀’-의 내용을 모른다면, 오히려 감동적일 것이다. 그런데, 이미 사단은 벌어진 셈이다.
다시, 아버지의 마음으로 돌아가자. 아버지는 죽은 딸의 살아있을 적 모습이 담긴 ‘뉴스릴 22번’ 필름을 확인하고 싶다. 딸의 모습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아버지는 그 1초의 영상을 찾기 위해 분투한다. 이 영화의 감동포인트는 바로 그 짧은 시간이다. 1초에 24프레임이 지나간다는 그 영화적 순간이 장예모의 영화적 기적을 안겨주는 것이다.
노동교화소를 탈출한 아버지 역은 장이(張譯)가 맡았다. 영화에 생동감을 더하는 더벅머리 소녀는 류하오춘(劉浩存)이다. 두 사람은 최근 한국에서 개봉한 장예모의 항일스파이영화 ‘공작조:현애지상’에도 함께 출연했다. 류하우춘은 지린(길림)성에서 태어나 베이징무용학원을 나왔다. 장쯔이도 베이징무용학원 출신이다. 그리고, 깡촌마을 영화관 영화기사는 판웨이(范偉)가 맡아 휴머니티를 더한다.
이 영화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열린 제15회 아시아필름어워즈에서 감독상과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극장개봉이 기다려지지만 영화 속 영화 ‘영웅아녀’ 이슈로 힘들 것 같다. 장예모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고, 그의 또 다른 뮤즈, 류하오춘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