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감독 중 외국에서 가장 많이 알려졌고, 한국을 찾은 외국 영화인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충무로 영화감독 박찬욱 감독이 신작을 내놓고 화려한 복귀를 준비 중이다. 어제(2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의 제작보고회가 열렸다. 통상 한국 신작영화 제작보고회는 CGV극장 체인 중 소규모에 속하는 CGV압구정 상영관에서 열린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오랜만의 신작, 그리고 칸 경쟁부문 진출작품답게 호텔에서 화려하게 열린 것이다.
영화 <아가씨>는 영국 여성작가 사라 워터스가 <벨벳 애무하기>, <끌림>에 이어 세 번째 내놓은 장편소설 <핑거스미스>가 원작이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런던의 뒷골목 범죄무리와 런던교외의 한 퇴락한 귀족집안이 ‘범죄’로 연결되는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라 워터스는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탁월한 묘사 여성동성애에 은근한 표현으로 많은 독자층을 갖고 있다. 박찬욱 감독이 이 원작을 택했다는 것 자체가 탁월한 선택인 듯하고, 소설의 내용을 1930년대 일제강점기로 치환시켰다는 사실이 흥미롭기 그지없다.
어제 제작보고회는 방송인 박경림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박찬욱 감독과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배우가 참석한 가운데 예고편과 메이킹 필름이 소개되었고 이어 흥미진진한 ‘아가씨’의 세계가 펼쳐졌다.
박찬욱 감독은 초반에 <아가씨>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털어놓았다. “제가 만든 영화 중에 제일 대사가 많고, 주인공이 네 명이나 되고, 그만큼 영화시간도 긴 편이다. 굉장히 아기자기한 영화다. 깨알 같은 잔재미가 가득한, 제 영화들 중에 제일 이채로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칸 진출과 관련하여 “정말 솔직히 말씀드려서 경쟁부문에는 초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말씀드린 대로 아기자기한 영화고, 예술 영화들이 모이는 영화제에 어울릴까 싶을 만큼 명쾌한 영화다. 모호한 구석이 없는 후련한 영화다. 대개 그런 영화제들은 좀 찜찜하고 모호한 게 남아있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냐? 그래서 미드나잇 스크리닝 정도에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공식부문으로 가게 됐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봐줄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식석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신예 김태리는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와 취재 열기에 긴장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처음 칸 영화제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모든 것이 다 처음이다 보니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행복하고 벅찼다. 모든 선배님과 감독님께 감사하다”며 당찬 소감을 전했다.
박찬욱 감독의 김태리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오디션을 하면 잘하는 배우들이 참 많아졌다. 그래서 선택이 힘들었다. 오디션 할 때 순간적인 영감을 주는 배우, 임자를 만나면 딱 느껴지는 게 있다. 그렇게 그냥 본능적인 직감에 의해서 한 선택이었는데 연기가 누구나 할 것 같은 접근방식이 아니라 굉장히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주눅 들거나 하지 않았다. 할 말 다하고 그런 것이 있어야 이런 큰 배우들과 만나서 자기 몫을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높이 샀다.”고 밝혔다.
<아가씨>로 첫 시대극에 도전한 김민희는 “시대극은 처음이었고, 흥미로웠다. 미술이나 의상, 분장까지 모든 것이 새롭기에 배우인 나 스스로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배우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노인 연기를 한 조진웅은 “촬영 전 4시간가량의 분장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스태프들을 믿고 의지하며 즐겁게 촬영했다. 덕분에 후견인 캐릭터에 훨씬 더 접근하기 쉬웠다”고 전해 새로운 변신에 대한 궁금증을 배가시켰다.
원작의 배경을 1930년대 조선으로 바꾼 것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봉건 질서 속 자본 계급이 점차 등장하는, 동양과 서양의 양식이 혼재하고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는 세계를 묘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작품이 이전의 작품과 다른 점에 대해 “그동안 만들어온 영화들이 과묵한 편이었다면, <아가씨>에서는 굉장히 의미 있고, 재치 있는 대사들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현대 배경의 영화에서 할 수 있는 표현에서 벗어나 수사가 동원된 멋들어진 표현, 그리고 이중적 의미를 내포한 재미있는 시도들을 마음껏 했다”고 전했다. 김민희는 “감독님은 배우가 가진 것들을 많이 펼칠 수 있도록 장을 열어주신다. 감독님 덕분에 감정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넓혀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들은 벌써부터 ‘수상가능성 질문’을 던졌고, 박찬욱 감독은 에둘러 답변하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영화를 보지도 않은 기자들이) 김민희가 칸 여우주연상을 받을 가능성에 대해 묻자 박찬욱 감독은 “상을 받고도 남을 연기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거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데 심사위원들의 생각이 어떨지, 입맛이 어떨지는 봐야 아는 거니까 지금 단계에서는 뭐라고 말씀 드리기가 힘들다. 민희씨 말고도 여기 계시는 네 배우 모두에게 그런 자격이 있다. 태리 양은 특히 첫 출연작으로 말하자면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가 된 셈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상 받은 것처럼 이미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칸 정복자다운 노련한 답변을 내놓았다.
칸 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진출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6월 개봉될 예정이다. (박재환)
아가씨 (2016년 6월 개봉예정)
감독: 박찬욱
출연: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김해숙 문소리
제공/배급: CJ엔터테인먼트 제작: 모호필름 용필름 홍보: 퍼스트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