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개막된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코로나 속에서 펼쳐진다. 개막작은 대만 구파도 감독의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원제: 月下/Till We Meet Again)가 선정되었다. 구파도(九把刀) 감독은 다작의 작가이기도 하다. 괴기, 공포, 로맨스 등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소설과 영화와 만화로 만들어내고 있다. 영화 데뷔작은 한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이다. 부천에서는 그의 학원호러물 <몬몬몬 몬스터>가 2017년에 상영되어 꽤 인기를 끌었다. 당초 올해 초 대만에서 개봉될 예정이었던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대만 코로나 사태가 엄중해 지면서 개봉이 지연되고 있다. 그 덕분(?)에 부천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 셈.
영화는 동네에서 농구 시합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동네 운동장에서 열심히 게임을 즐기던 중에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그 비를 피하던 샤오룬(가진동/커전동)이 그만 벼락을 정통으로 맞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른 세상에 와있다. 그는 이미 죽은 것이다. 그리고 벼락을 맞는 순간 살아생전의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린다. 연인 샤오미(송운화)와의 사랑도 말이다. 그런 그가 지옥 혹은 천당으로 가거나,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큐피드인 ‘월하노인’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파트너 핑키(왕정/왕징)과 함께 이승에 내려와 수많은 커플의 인연을 맺어 주는 것이다. 어떻게 이 남자와 저 여자를 붉은 실로 연결해 주면 된다. 가끔 가다가 남자와 남자를 연결해줘도 된다. 월하노인 일을 하다 생전의 연인 샤오미를 만나게 된다. 조금씩, 언뜻언뜻 떠오르는 기억들. 이제 그는 샤오미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붉은 실을 자아내기 시작한다.
서양에 사랑스러운 큐피드가 있다면 동양권에는 월하노인이 있다. 남녀의 인연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중국에서는 보통 붉은 색 실을 이어준다. 한국에서는 ‘청실홍실’로 대변되듯 두 가지 색깔로 성별 구별을 한다.
한국영화 [신과 함께]를 보고 자극을 받았다는 구파도 감독은 어제 화상으로 연결된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죽은 뒤 저승에서 심판을 받아야한다면 관객으로서는 꽤나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월하노인처럼 관용적이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며 이런 상상을 했다고 한다. 여하튼 [신과 함께]와 비교하면 저승은 재밌고, 저승사자 대신 월하노인은 이승 세계의 청춘커플들을 알뜰히 챙긴다.
감독 구파도의 본명은 가경등(柯景騰/커징텅)이다. ‘구파도’(九把刀))는 ‘아홉 자루의 칼’이란 뜻이다. 김용과 무협소설 좋아하는 그가 고등학생 시절 지었다는 노래에서 연루했다. 그 노랫말에 ‘刕’(칼로 벨 리)가 여러 번 등장한다고. [리리리]만 해도 칼이 ‘아홉자루’ 인 셈이다. 어쨌든 그게 기괴하고, 장난스럽고, 창의적인 구파도의 탄생이다.
가진동은 구파도 감독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몬몬몬 몬스터]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 같이 작업했다. 송운화는 왕대륙이 공연한 [나의 소녀시대]와 류이호와 연기한 [안녕,나의 소녀시대]에서의 로맨틱 연기로 한국의 대만영화매니아에게 많이 알려진 배우이다. 가진동과 함께 월하노인 플레이를 펼치는 핑키 역의 왕징은 대만의 흑역사를 다룬 [반교:디텐션](영화판)에서 여주인공으로 나왔던 배우이다.
BIFAN개막작으로 상영된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10일(토)과 13일(화) 두 차례 더 상영될 예정이다. 참, 대만 원제 ‘월하’(月下)보다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가 시적이기는 하다. 주성치(서유기)스럽기도 하고 왕가위(중경삼림)같아 보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 등장하는 대사이다. 외워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