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존재를 애도하는 감정은 가끔 의지와 상관없는 죄책감으로 인해 퇴색된다. 그로부터 비롯된 어둠은 우리의 삶을 야금야금 갉아먹지만 인간에겐 그 과정에 대항할 마땅한 힘이 없다.
상실을 '극복한다'는 건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에 저항하다 힘을 잃은 우리는 끝내 그것을 품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 끝에서 치는 마지막 몸부림은 고통의 통로 끝에 꿈, 혹은 상상 같은 조그마한 탈출구를 만들어 놓는 것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곧 그 방법이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30일까지 어피스어피스(a piece a peace)에서 진행된 영상 전시 '만들어진 이야기'에서는 전작 '조제', '페르소나', '아무도 없는 곳' 등으로 알려진 김종관 감독의 작품이 상영됐다. 전시는 예약제로 운영됐으며 관객들에게는 상영이 시작되기 전 영상 속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가 담긴 소책자와 간단한 음료가 제공됐다. 더불어 상영이 끝난 후 그의 작품 세계가 담긴 공간을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김종관 감독은 전작들을 통해 비현실적인 공간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그의 작품 속에서 꿈과 상상은 상실을 겪은 이들이 사랑하는 이들, 혹은 추억과 마주하는 공간이자 그리움이 편히 머물고 애도의 감정이 자유롭게 떠도는 장소다.
이번 전시 또한 김종관 감독이 표현한 상실의 심상이 담겨 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인 선아와 현경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들로 자신의 '만들어진 이야기'들을 각자 꺼내 놓는다. 한때 사랑했던, 혹은 자신의 안위를 지켜주던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마음의 잔에 앙금처럼 가라앉은 슬픔을 드러낸다. 결국 두 인물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손에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더불어 작품 중반부에서 두 주인공이 과거의 추억을 "흔한 추억"이라 일컫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다. 대사를 잘못 이해해 '후한 추억'이라고 들었는데 오히려 그 말이 더욱 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부분이다.
'만들어진 이야기'를 준비한 김종관 감독은 전시를 마무리하는 소감을 전했다. 먼저, 그는 "'만들어진 이야기'는 관람객이 영화를 만든 공간에서 극을 관람하고 관람객 스스로 이야기를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상영 전시다. 하나의 회차 당 단 네 명의 관객만 받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극장이다"라며 이번 전시에 대해 친절히 설명했다.
이어 "상영을 방해하는 모든 요인이 이 상영을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장치가 되기도 하고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체험이 되기를 바라며 작업했다. 매우 한정된 관객과 만날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모인 373명의 관객들과 전시를 통해서 특별한 교감을 했다는 생각이다"라며 이번 전시를 준비하게 된 소감을 밝혔다.
더불어 "시사도, 큰 홍보도, 보도자료도 없는 작은 개봉이었지만 가장 단순한 형태 안에서 창작을 고민하고 소중한 관객들과 내밀하게 만나게 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관객을 향한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김종관 감독은 차후 계획에 관해 "차기작은 정해진 것이 없으나 '만들어진 이야기'를 다른 전시 공간에서 상영해보고 싶은 생각도, 가을 즈음 전시 시즌 2를 준비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며 관객들을 향한 바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