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가 있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하지만 여기서 크루엘라는 그 너머의 선택지로 나아갈 것이라 예고한다. 어떠한 해피 엔딩보다 달콤한 결말, 바로 자비 따위 없는 복수다.
영화 '크루엘라'(감독 크레이그 질레스피)는 학교에서 쫓겨나 런던에 오게 된 에스텔라(엠마 스톤 분)가 엄마를 잃게 되고 방황하다 만난 친구 재스퍼(조엘 프라이 분), 호레이스(폴 월터 하우저 분)와 함께 성장하며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향해 나아가던 중 만나는 사건들을 담고 있다.
그는 엄마를 잃은 이유가 자신이라고 자책하며 유년 시절을 불행 속에서 보내게 된다. 작품 초반부에 크루엘라의 인생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은 그가 어떠한 터널을 지났는지 친절하게 보여주며 '나쁜 일이 생기면 그만큼 좋은 일이 오는 것이 아니라 더 나쁜 일이 올 때도 있다'는 현실을 말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기회는 찾아온다. 항상 동경하던 리버티 백화점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고 우연한 계기로 남작 부인(엠마 톰슨 분)의 눈에 띄게 되어 그의 밑에서 일하게 된다. 평생을 홀로 버텨왔기에 곧잘 일을 잘하는 크루엘라는 금방 남작 부인의 신뢰를 얻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크루엘라는 참혹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크루엘라'는 '미쳤다'라는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작품이다. 극중 '싸이코'라는 단어가 대사에 많이 나오는데 진정한 싸이코들의 대결이다. 게다가 이 두 미치광이의 싸움은 박빙이라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지울 수가 없다.
주연 배우 엠마 스톤과 엠마 톰슨. 배우 이름에 엠마 들어가면 무조건 봐야 한다는 학계의 정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영화 '관상'의 이정재를 능가하는 엠마 톰슨의 등장신의 흡입력은 상당하다. 더불어 실사화 과정에서 분명 어색한 부분이 드러날 것이라 생각했던 신들은 일말의 군더더기조차 없었고 오히려 엠마 스톤이 크루엘라 특유의 신경질적이고 앙칼진 표정과 제스처를 완벽히 구현해 크루엘라 그 자체를 보는 느낌이다. 그외 재스퍼, 호레이스처럼 애니메이션 원작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적절히 각색된 서사로 작품 속에 잘 스며들게 만들었다.
패션이란 소재를 적절히 믹스한 것도 경이로울 정도로 세련되고 대담하다. 작품 속에 총 몇 벌인지 감이 안 올 정도로 주인공의 심리를 적절히 묘사하는, 그 신 자체를 예술로 만들어버리는 룩들이 등장하는데 그야말로 보자마자 감탄사를 던지게 만드는 드레스들이다. 크루엘라의 다채로운 착장이 담긴 룩북을 보는 것 같은 경험만으로도 거두절미하고 이 영화는 돈 주고 볼 만하다.
작품 속에 담긴 의미도 두 인물의 이야기만큼 강렬하다.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남작 부인과 크루엘라는 같은 미치광이지만 다른 결이다. 둘 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이나 단 한 가지, 감정을 쓰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
남작 부인은 자신의 감정이 자신에게 있어서 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계속 크루엘라를 향해 "딴 사람은 신경 쓰지 마. 타인은 방해물일 뿐이야"라는 조언을 던진다. 자신의 앞길에 놓여진 장애물은 무조건 해치우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온 그는 감정을 배제하는 싸늘한 인간성을 드러낸다.
반면 크루엘라는 감정을 적극 활용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불행했던 시절에서 온 감정을 지나치지 않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삼아 모든 계획을 실현해나간다. 그에게는 감정이 오히려 강점이 된 것이다. 그는 엄마를 향한 사랑과 그로 인해 태어난 복수심으로 결투의 고지를 선점하고 승리를 쟁취한다. 결말에 선 그의 표정에는 슬픔도, 미련도 남아있지 않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피해자에게 "용서하면 편해져"라는 말을 하는 이들을 목격할 때가 있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것만큼 더한 가해가 없음에도 '좋게 넘어가는 것이 낫다'는 말을 위로처럼 던지며 무례를 범한다. 하지만 '크루엘라'는 그러한 이들에게 보란 듯이 당차게 말한다. "I am woman, Hear me roar!" 5월 2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