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9일) 개봉하는 독립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제목처럼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족의 울타리에서, 직장 동료와의 소속감에서 떨어져 자기만의 성을 쌓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고,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봉을 앞두고 홍성은 감독을 만나 ‘영화’와 ‘고독사’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 작품은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이전에는 단편 [굿 파더]를 연출했을 뿐이다.
26분짜리 단편 [굿파더]에서 아버지는 딸의 생일 파티를 위해 분주하다. 케이크도 사고, 조촐한 케이터링 서비스도 준비한다. 그리고, 방안에만 처박혀있는 딸을 위해 이전 다니던 직장 후배에게 인사 청탁도 한다. 딸은 그런 아버지가 못마땅하다. 의사인 아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왜 이렇게 아버지에게 반감을 품고, 심지어는 증오할까. 짐작은 간다. 이 영화는 네이버시리즈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 조금은 무례하지만 먼저 <굿 파더>이야기부터. 그 단편을 보면 이 영화와 연관성이 좀 있는 것 같다. 감독은 아버지라는 존재에 반감이 있는 것 같다.
홍성은감독: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저도 20대 초반에는 아버지랑 이런저런 트러블이 있었다. 딱 그 나이에 겪어야했던 문제들일 것이다. 예민해서 상처를 잘 받았다.”
● 외로운 사람
신작 <혼자 사는 사람들>은 혼자 사는 진아(공승연)는 작은 아파트와 직장(카드회사 상담원)만을 오가는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박정학)와의 트러블, 수습으로 들어온 수진(정다은)과의 짧은 만남 등이 단조롭게 펼쳐진다.
- 공승연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었는가. 너무나 고전적인 ‘미녀’ 얼굴 아닌가. 영화에선 도도하기 이를 데 없는 냉(冷)미녀 느낌이 묻어난다.
홍성은감독: “시나리오를 보면 다들 진아에 대해 비호감이었다, ‘냉정하다’, ‘무뚝뚝하다’였다. 이 영화는 진아라는 인물을 오롯이 쫓아가야하기에 캐스팅할 때 호감형 외모를 택했다. 의외의 캐스팅을 원했다. 배우에게서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를 확 깨는 재밌는 상상을 하면서. 공승연 배우를 실제 만나보니 느낌이 괜찮았다. 조금 무뚝뚝한 이미지가 필요했는데 친절하면서도 도도해 보이기까지 했다. 진아 역할을 잘 할 것 같았다.”
- 그렇게 호감형 미녀배우를 캐스팅하고는 실제 영화에선 세수나 화장 등 자신을 꾸미는 장면이 전혀 없었다. 의도적인가. 의상도 소탈하다. 감독님 옷을 입기도 했다는데 어느 장면인가.
홍성은감독: “시나리오에서는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젖은 머리를 한 채 욕실에서 나오는 컷이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집이라는 공간이 중요했다. 진아는 자신의 모든 물건을 방안에 몰아넣고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한다. 거실은 텅 비어있다. 항상 있는 안방과 텅 빈 거실로 단순화했다. 화장실 모습을 추가하면 그런 설정이 약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머지 장면은 자연스레 빠진 것이다.”
“옷은 의상팀에서 준비했던 옷이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입고 있던 것을 입혀보니 괜찮았다. 체크무늬 남방이다. 진아가 맨날 입고 다니던 점퍼가 내 스타일이다.”
● 쓸쓸한 사람
- 아버지 집의 거실에 CCTV(홈캠)을 단 것은 누군가의 일상을 훔쳐보는 것 같다.
홍성은감독: “진아가 그 집에 홈캠을 설치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 엄마를 돌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아는 엄마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고, 17년 만에 돌아온 아빠가 그 집을 차지해서는 큰 소리 뻥뻥치는 것이다. 그러다가 유언장 때문에 그 집으로 갔다가 그걸 발견하고는 ‘참, 이것 설치해 뒀었지’하는 것이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게 시작점이다. 그 장면에서는 ‘혼자 죽는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옆집 남자도, 자기도 혼자이니. 그래서 아빠를 홈캠으로 지켜보는 것이다. 아버지와는 그렇게 돈독한 인간관계는 아니지만 말이다. 아버지의 현재 상황이 궁금할지 모른다. 막연한 걱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번 보다가 계속 보게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밉기도 한 아버지가) 좀 못 살았으면 하는. 근데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버지는 사람들과 왕래도 하고, 나름 재미있게 산다.”
- 진아는 출퇴근 버스에서, 집에 돌아온 뒤 계속 폰으로 동영상을 본다. 진아가 보는 영상은 어떤 것인가. 드라마인가, 예능인가, 넷플릭스인가.
홍성은감독: “설정에서는 ‘드라마 소리가 들린다’ 였다. 촬영감독님과도 의논을 나눴는데 그 장면은 주인공이 영상을 멍하니 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뭘 보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차단이다. 그가 뭘 보고 있는지 알려주면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좁혀줄 것이다. 예능을 본다면 그가 웃기는 사람으로 보일지 모른다. 물론 드라마를 생각했었고, 여행프로그램도 많이 설정했었다. 이야기가 있고, 내러티브가 있고 몰입도가 있는 것으로.”
● 홍성은 감독, ‘굿 파더’와 ‘외로운 사람들’
홍성은 감독은 2017년 한국 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장편연구과정 13기에 선정되어 데뷔작 <혼자 사는 사람들>을 연출한 홍성은 감독은 “많이들 느끼지만, 느낀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외로움이란 감정”에 관심이 많다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 다시, 단편영화 [굿파더]에 대해 질문하겠다. 어떤 작품인가.
홍성은감독: “한국 영화아카데미(KAFA) 졸업영화제 작품으로 메가박스 신촌에서 이틀 동안 상영했었다."
홍성은 감독은 KAFA 정규과정 34기(연출) 출신이다. 동기 중에는 첫 장편연출인 셈이다.
- 이번 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도 타고 반응이 좋았다. 단편 [굿 파더]는 영화제에 출품하지 않았었나?
홍성은감독: “졸업영화제 때 말고는 한 번도 소개되지 않았다. 그게 조금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에 전주에서 소개되어 어떤 콤플렉스가 해소된 것 같다.”
* 홍성은 감독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부산영화제’에는 출품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홍성은감독: “아, 이 영화는 작년 말에 완성되었다. 신인급 독립영화감독들이 전주(JIFF)에 가면 부산(BIFF)에 앙심을 품기도 한다. 부산은 보는 눈이 없다는 둥.“ (신인감독들의 치기, 열정으로 이해하면 될 듯!)
- 전주에서 상영되었을 때 반응은 어땠나.
홍성은감독: “보신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 같다면서, 내가 잘 살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더라. 제가 영화적 배경도 약하고, 이 영화는 예술적 성취 이런 걸 목표로 만든 게 아니다. 진아 이야기가 정말 내 이야기 같았다.”
- 영화적 배경이 약하다니 더 궁금하다. 영화아카데미 나오기 전에 직장을 다녔다는데.
홍성은감독: “공공기관에서 3년 반 정도 일했다. 코트라(KOTRA)에서 불어권 담당이었다. 어렸을 때 프랑스에 살았었다. 아마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된 것은 프랑스 영화들이었을 것이다.”
- [혼자 사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진상 고객 중에는 상담원에게 ‘명세서 읽기’를 강요하는 사람과 ‘타임머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사례 연구를 많이 했을 텐데 이 두 부류를 택한 이유는.
홍성은감독: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례를 찾다가 택한 것이다. ‘타임머신’의 경우는 과거로 가고 싶어 하는 에피소드와 맞는 것 같았다. ‘명세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사람의 감정을 휘잡는 것이 포인트 같았다.”
● 타임머신 진상고객과 고독사한 옆집 남자
- 극중에 등장하는 ‘타임머신 진상고객’은 곽민규 배우가 목소리 연기를 한다. 홍 감독은 [파도를 타는 소년]의 제작스태프였다. 그 영화엔 곽민규가 나온다.
홍성은감독: “‘파도를 타는 소년’에서는 연출부였다. 제작연출인데 회계도 하고 그랬다. 독립영화니까. 곽민규 배우는 KAFA 동기인 오성호 감독의 단편 [눈물]에 나왔던 배우이다. 그 영화는 상도 많이 받은 작품이다. 그 작품에서 곽민규는 찌질이인데 큰소리치는 그런 스타일의 인물이었다. 타임머신 진상고객을 맡기고 싶었다. 평소 말투가 재밌는 배우이다.”
- 진아가 사는 아파트 옆집 남자(김모범)는 고독사한다. 그런데 시신이 발견된 날 아침에 아파트 복도에서 만나는 신이 들어간다. 어쩌면 호러적 요소 같기도 하다. 그 장면 설명 좀.
홍성은감독: “자신의 옆집에서 누군가 죽었는데 몰랐다면? 묘한 기분이 들 것이다. 죄책감도 들 것이고,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 감정들을 귀신의 모습을 통해 미스터리하게 가져가고 싶었다. 그 전까지는 진아는 확고한 사람이었다. 혼자 사는 것에 대해. 그런데 그때부터 금이 가고, 자신의 영역에 누군가가 침범한 것이다. 그 감정이 미스터리로 등장한 것이다. 자신이 세상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아파트 복도는 진아가 지나가며 옆집 남자와 스치듯 마주치는 공간이다. 중요한 포인트였다. 공승연 배우를 풀샷으로 찍었다. ‘인사 좀 해 주지..’라는 말을 ‘작별인사’와 연결하고 싶었다.
- ‘굿 파더’와 ‘혼자 사는 사람들’, 그리고 굳이 ‘파도를 타는 소년’을 포함하더라도 벌써부터 감독의 경향성이 느껴진다. 변형된 가족드라마 같다고나 할까.
홍성은감독: “영화를 배우기 시작할 때 멋있어 보이는 것을 경계했다. 어떤 명제를 내리고 나면 갇혀버릴 것만 같았다. 배울 것이 많은데 말이다. 그럴 때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을 본다. 나의 베스트는 <환상의 빛>이다. 확실히 와 닿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 외로움과 작별인사
-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은지.
홍성은감독: “시놉시스를 열심히 쓰고 있는데 막혀 있다. 로맨스이다. 사람과 사람이 아닌 존재가 연애하는 것을 쓰고 싶다. 설화를 보면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괴물이 많잖은가. 그들은 왜 인간이 되고 싶을까.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창조주를 괴롭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들이 보기엔 인간은 모여 산다. 모여 살면 외롭지 않을 것 같아서 자신과 같은 존재를 또 하나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런 존재들의 눈으로 인간이 되어 보고 연애를 한다는 내용이다.”
- 옆집 남자와의 작별, 어머니와의 작별, 아버지와의 또 다른 의미에서의 작별과 함께 옆집에 새로 이사 온 남자(서현우)가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감독이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별’이란 어떤 것인가.
홍성은감독: “진아는 이별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엄마가 죽었을 때도, 옆집 남자의 죽음에도 감정적으로 저항하는 사람이다. 이별을 못하는,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랑 헤어지면 관계가 제로가 되어버린다고. 무의미하거나 허망해진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뜻 안녕하고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이웃에 새로 이사 온 성훈(서현우)은 전 세입자를 본 적도 없지만 그 연결성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 표현방식이 제사를 지내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에 책임을 느낀다거나 죄책감을 갖는 것, 마음이 조금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그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작별인사는 끊어냄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 그럼, ‘타임머신’ 이야기로. 왜 굳이 2002년인가. 특별한 경험이 있나.
홍성은감독: “2002년 월드컵이 열릴 때 중학생이었다. 그때가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랑 똑같이 빨간 옷 입고, 일체화된 것이다. 열광적으로 말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확실히 비범한 경험이었다. 그 진상고객도 그 시절이 그리울 것이다. 못 겪어본 세대에게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화되고 동조되는 것.”
고독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대~한민국!”이 환청으로 들린다. 물론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에선 그런 다이내믹한 장면은 없다. 공승연, 정다은, 서현우, 박정학이 그리는 쓸쓸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홍성은 감독의 장편데뷔작 <혼자 사는 사람들>은 오늘(19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