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는 모두 10편의 독립영화가 출품되었다. 영화제 측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만들어내는 영화계의 위기 속에서도 한국 독립영화가 얼마나 굳건하게 버티며 생존하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지난 5일 열린 시상식에서 <성적표의 김민영>이 한국경쟁부문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공동연출을 맡은 이재은-임지선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영화는 근래 만들어진 영화 중 가장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이다. 아기자기한 스토리에 재기발랄한 대사, 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배우들의 연기가 보는 재미를 안겨준다. 딱 스물 살 감성의 내용이다.
영화는 기숙사 생활을 하는 청주의 고3 수험생 룸메이트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정희(김주아), 김민영(윤서영), 수산나(손다현)는 단짝친구. 수험 100일을 앞두고 이들은 우정의 공동체인 ‘삼행시 클럽’을 일시 중단하기로 한다. 시험 결과는? 민영과 수산나는 대학에 진학하고 정희는 떨어지고 동네 테니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정희가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잘린 뒤 민영과 만나기로 한다. 오랜만에 바람을 쐴 겸, 정희는 트렁크 가득 짐을 챙겨 떠난다. 대학을 간 친구와 대학을 못 간 친구가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다. 함께 수다도 떨고, 놀려 다니며, 우정을 만끽한다. 그런데, 민영의 성적표가 나오면서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민영은 학점 정정을 위해 고심하고, 정희는 옆에서 여전히 딴소리, 흰소리, 상상의 나래를 편다. 짜증이 난다. 파열음이 들린다. 어찌 될까.
수험생 시절, 학창시절을 지내본 사람이라면 어쩌면 이 영화에 공감할지 모른다. 아마도 청주의 여고생들은 저렇게 귀엽게, 문학적으로 우정을 쌓는 모양이구나 생각할지 모르겠다. 감독은 세 명의 진로를 갈라놓는다. 세상은 넓고, 인간관계는 확대될 것이다. 물론, 여전히 우물 안 존재로 멈춰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 친구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달려갈 것임에 분명하다. 정희는 마지막에 민영을 위해 메모를 남긴다. 알 수 없는 불안, 두려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다림을 기약하며 말이다. 그들의 꿈이, 상상력이 아무리 가벼워도 한심하다고 말할 수 없고, 누군가의 행동이 덜 절실하다고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를 다 본 후에야 영화 제목으로 쓰인 ‘성적표의 김민영’에 대해 음미해 보게 된다. ‘김민영의 성적표’라고 했다면 결과론적일 것이다. 그러나, ‘성적표의 김민영’에서는 확실히 ‘현재적’ 존재에 대해 파악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정희의 입장에서 본 인간 민영의 감정보고서일 것이다. 물론, 미래에는 이 세 친구의 우정이 어찌될지 알 수 없다. 현재로선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에선 정말 뜬금없는 장면이 재기발랄하게 끼어든다. 민영의 학교 캠퍼스 장면. 교내방송국 리포터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한국전쟁에 대해 학생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이 전쟁이 남침인지, 북침인지.” 이전에 관련뉴스를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역사적 문제로 인식했는데 다른 경우도 있었다. 김일성이 쳐들어온 것에 대해 남쪽으로 쳐들어왔으니 “남침 아닌가요?”라고 대답하는 학생이 있다는 것이다. ‘남(쪽)침(략)’으로 이해한 것이리라. 문맥의 문제이다. ‘김민영의 성적표’나 ‘성적표의 김민영’은 말이다.
여하튼 근래 민영, 정희 또래의 학생이 등장하는 한국영화에서 이렇게 욕설 하나 나오지 않는 청정무구의 순수영화가 있었던가. 힐링 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