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은 즐겁다. 언제나 그랬으면 좋겠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감독 이지원)에는 이러한 따뜻한 염원이 담겨 있다. 어린이날 개봉을 앞둔 이 작품은 아픈 엄마와 생계를 이어가느라 바쁜 아빠 사이에서 자란 다이(이경훈 분)가 바라보는 세상이 담겨 있다.
이지원 감독은 상실을 처음 겪는 다이의 서사를 통해 '아이들의 세상'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서 엄마의 울타리가 사라져도 다이를 지켜줄 더 큰 울타리가 있음을, 모양과 형태에 상관없이 모든 가족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Q. '아이들은 즐겁다'는 아이들, 그것도 상실의 아픔을 겪는 아이들에 관련된 영화다. 어떤 계기로 기획하게 됐나?
큰 줄기의 스토리 라인은 원작인 네이버 웹툰 '아이들의 즐겁다'를 참고했다. 그럼에도 상실이라는 테마는 이 영화에서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우선 다이라는 아이의 성장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성장이란 건 다양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들도 있다. 이러한 순간은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일이라 생각했다. 상실의 크기는 다양하다. 작은 장난감에서부터 사랑하는 누군가의 상실까지, 하지만 상실이 있으면 또 다른 채움이 있듯이 상실을 통해 비워진 곳은 다른 것들로 채워진다. 그리고 성장은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Q. 전작 ‘여름밤’에 이어 주인공들의 연령대가 낮아졌다.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담기 위해 어떤 점에 중점을 두었나?
최대한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섣불리 아는 척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 또한 아이였던 적은 있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아무리 아는 척해봐야 그야말로 '척'이지 않나. 오디션을 통해 아이들의 세계를 엿보려고 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가장 경계했던 것은 '아이니까. 이럴 것이다’라는 판단이었다. 아이들을 경험하면서 느꼈던 것은 아이들은 생각보다 아이 같고 생각보다 어른 같다는 점이었다. 어른들은 섣불리 판단하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보다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라고 생각하며 접근했다. 누군가에게 작은 일이 누군가에게 큰일일 수 있다는 점은 나이와 상관없이 그들의 세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Q. 그래서 더욱 현실적인 작품이 탄생된 것 같다. 특히 아이들의 캐스팅이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심지어 실제 성격과도 닮아 있는 느낌이다. 캐스팅 과정은 어떠했나?
실제 캐릭터와 성격과 성향이 비슷한 배우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3개월 동안 300명 정도의 어린이 배우들을 만났었고 지정 대사, 자유 연기와 같은 연기적 스킬을 뽐내는 방식은 지양했다. 대신 캐주얼한 인터뷰나 연극놀이, 간단한 상황극 위주의 오디션을 진행했다. 배우들이 오디션장에서 경직된 상태로 하는 연기보다 최대한 편안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었고 이런 방법들은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됐다.
Q. 치열한 캐스팅을 통해 다양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을 완성시켰다. 작품 속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 중 학창 시절 실제의 자신은 어떤 캐릭터에 가까웠나?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개인적으로 다이와 유진, 두 캐릭터였던 것 같다. 환경이나 이런 것들을 떠나 성격적인 면에서 내성적이고 소심한 면이 있었지만 친한 친구들과는 굉장히 개구지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Q. 그렇다면 자신의 어린 시절의 실제 경험이 이 작품에 담겨 탄생한 장면들이 있나?
구체적으로 같은 경험은 없지만 대부분의 상황들이 그렇다. 누구나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작은 것에 상처 받고 작은 것 때문에 싸우고 그런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에서 그런 것들이 절대 작다고 할 수 없다. 이것은 아이와 어른의 문제는 아니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누군가의 세계에서는 큰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장면들을 만들었다.
Q. ‘아이들은 즐겁다’ 속 아이들의 해맑고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작품을 촬영하면서 감독과 스태프들 또한 지켜보며 위안이 되고 힐링이 됐던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
망가진 꽃을 땅에 심어주는 장면이 생각난다. 작은 손으로 땅을 파고 꽃을 심고 꾹꾹 누르고 돌을 고르며 땅을 다져주는 모습을 촬영할 때 마음 한 켠이 뭉클해지는 경험을 했다. 나를 비롯해 카메라를 보고 있던 촬영감독 그리고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이 같은 마음을 느꼈던 귀중한 순간이었다.
Q. 어른이 아이가 되고 싶다 해서 될 수 없듯, 아이가 일찍 어른이 될 수도 없다. 다이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만 영락없는 아이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해 짠했다. 가장 엄마의 공허함을 앓는 다이의 모습을 강조하고자,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장면이 있다면 무엇일까?
엄마의 부재로 인한 공허함을 일부러 강조하고 싶진 않았다. 다이가 홀로 남겨진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이 있는데 일부러 짠하게 표현하기보다는 그 시간이 나에게 어떤 시간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혼자 잘 보내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예를 들어 다이 혼자 TV 보는 장면이 그렇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지 않았나 싶다.
Q. 언론시사회에서 아이에게 엄마라는 세계가 사라져도, 그 세계를 넘어 더 따뜻한 울타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던 바 있다. 작품을 보면 볼수록 아이들이, 제대로 된 어른들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 본인이 생각하는 어른의 정의는 무엇인가?
이전에 만들었던 '여름밤'이라는 단편도 ‘어른 됨’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했다. 이 화두가 이 작품까지 이어졌던 것 같다. 그때와 같은 생각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나이와는 별개인 것 같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어떻게든 하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Q. 작품에는 인생의 출발선에 선 아이들이 각자 다양한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아이들이지만 마치 어른들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아이들을 다룬 영화지만 어른들을 위한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이 작품이 어른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좋겠나?
이 영화는 아이들의 이야기지만 어른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그들이 처한 환경과 상관없이, 친구들이나 가족의 모양과 상관없이 모두가 소중하고 귀하고 즐거워야 마땅한 존재다. 그리고 그런 세상은 어른들이 만들어줘야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내 주변의 아이들을 돌아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어떤 어른인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가 된다면 너무 행복할 거 같다.
Q. 5월 5일, 어린이날에 개봉하면 많은 가족 관객들이 코로나를 뚫고 극장을 찾아와 '아이들은 즐겁다'를 볼 것 같다.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면?
작년부터 이어져 온 팬데믹 상황에 다들 지치고 힘든 마음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관람을 독려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안전하게 마스크를 쓰신다면 극장은 생각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수고로움을 뚫고 오신 관객분들에게 이 영화는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선선한 즐거움과 따뜻한 위로를 동시에 느끼실 수 있는 봄바람 같은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