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우선 설명부터. 국가인권위원회는 작년 8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 함께 성별·장애·종교·성적지향·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모욕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긴 '혐오표현 대응 안내서'를 전국 학교에 배포했다. 여기에는 중국인을 비하하는 '짱개'나 흑인을 지칭하는 '흑형' 등을 혐오표현이라 적시했다. 그런데 [짱개]를 내세운 영화가 소개된다. 난감하다. 그런데, 감독이 ‘자신의 처지’를 그보다 더 적확하게 내세울 수가 없었나보다.
지난 주 막을 올린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시네마천국] 섹션에서 상영되는 작품 중 장지위(張智瑋) 감독의 영화 제목이 바로 <짱개>(Jang-Gae: The Foreigner)이다. 감독의 영문표기(Chang Chih-wei)를 봐서 그가 대만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대사의 대부분이 한국어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대만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의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남학생이다. 이제부터 제목 ‘짱개’에 실린 험난한 한국인살이, 한국살이가 짐작이 갈 것이다.
‘이광용’(賀業文,허예원)은 고등학생이다. 학교에선 쓸데없이 껄렁대는 급우에게서 이런저런 놀림을 받고, 심하게 린치도 당한다. 한국에서의 생활, 한국에서의 삶이 온통 불만일 수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학교에서 무려 ‘반장’이다. 국사시간에 선생님이 "왜 우리나라를 ‘KOREA’라고 하지?“라는 질문에 오직 그만이 ”고려시대 대외적으로 널리 무역하면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대답한다. 선생님은 ’한국인도 아니면서 너희보다 더 한국사를 잘 안다‘고 말한다. 광용은 아버지에 대해 불만이 많다. 항상 ’근본을 잊지 말라‘라고 말하면서도, 자기를 ’화교학교‘가 아니라 ’한국학생들 틈바구니의 학교‘로 진학시킨 것부터 말이다. 자신은 완전한 한국인 되고 싶어 ’귀화신청‘ 서류를 갖고 있지만 아는 사람은 한마디씩 거든다. ”한국인이 왜 되려고 그래? 군대 안가도 되잖아.“ 광용은 어머니(이항나)와는 사이가 좋지만 아버지와는 유독 데면데면하다. 그러던 중에 광용은 학교에서 왕따 취급받는 친구(김예은)에게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낀다. 어느날 아버지가 암으로 쓰러지고 광용은 아버지의 진심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짱개’의 감독 장지위는 대만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일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땅에 화교가 살았었다. 지금은 중국 사람이 더 많이 한국에 쏟아져 들어왔기에 ‘대만 사정’을 잘 모른다. 이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기는 여친과의 대화에서.
- 넌 어디서 태어났니?
한국에서.
- 아버지는 어디서?
- 한국에서.
그럼 할아버지는?
- 산동에서 전쟁 피해 오셨어.
아마도, 그 옛날(중국 수교 전) 우리나라에 정착한 그 많은 중국인들은 저런 경우일 것이다. 중국 산동성에서 몸뚱이 하나 건너와서 짜장면을 팔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던 그 왕서방들. 형편이 피면 대만이나 홍콩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미국으로 이민 갔을 것이다. 아니면, 온갖 풍파, 어쩌면 손가락질 받으며 한국에서 ‘중국인의 피’로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여하튼, 대만하고는 지연, 혈연이 없는 광용은 ‘한국인 주민등록증’이 아니라 대만여권(中華民國無戶籍護照)을 갖고 있다. 그런데, 또 놀라운 사실. 그가 미국교환학생을 신청하지만 결국 탈락한다. 대만정부에서 보자면 ‘대만사람이지만 대만사람이 아닌 것’이다.
‘이광용’은 아마,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대만국적을 얻든, 한국인으로 완전 귀화를 하든지 말이다. 과연 광용은 어디에 더 애정을 느끼고, 자신의 운명을 기탁할까. 영화 [짱개]에서는 또 다른 중국인, 혹은 대만사람의 정체성을 만나게 된다.
참, ‘짱개’의 어원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장궤’(掌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금고를 관리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중문제목을 보니 ‘醬狗’를 사용했다. ‘자장면’과 ‘개’를 사용한 감독의 의도가 짐작이 간다. 흥미로운 영화이다.
장지위 감독의 디아스포라 영화 [짱개]는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시네마천국’ 섹션에서 두 차례 상영된다. 어떤 방식이든 한국에서 소개되었으면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