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든 여론조사를 하면 가장 신뢰도가 낮은 등급을 받는 직업군이 정치인이다. 영화평론가보다 더 낮은 등급을 받는다. 해외뉴스에서는 멱살잡이를 넘어 격투기를 펼치는 국회의원 모습을 심심찮게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한때(?) 그랬다. 난장판 국회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라가 바로 대만이다. 대만은 총통(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고, 의원이 바뀌어도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만큼 다혈질인 모양. 그런 모습을 날카롭게 풍자한 영화가 <겟 더 헬 아웃>(Get The Hell Out 감독:왕이판)이라는 작품이다. 중문제목은 ‘逃出立法院’(‘입법원=국회’를 탈출하라)이다. 얼마나 난장판이기에? 상상을 초월한다. 작년 대만에서 개봉되었고, 지난 주 개막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불면의 밤] 섹션에서 소개되었다.
물론, 영화는 가상의 이야기다. 대만정국이 심상찮다. 가상의 강대국 세인트아리안이 대만에 화학공장을 건설하려고 한다. 독성폐기물에 감염되면 광견병 증세가 있고, 점점 좀비처럼 전염된다는 것. 공장이 들어설 마을이 지역구인 슝잉잉(賴雅妍,라이아옌)은 분기탱천하여 극렬 반대투쟁을 벌이다 제명된다. 그 빈자리를 국회경비원 왕유위(禾浩辰,허하오천)가 얼떨결에 보궐선거로 당선된다. 세인트아리안 대통령과 회담 중 감염된 대만 총통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펼치게 된다. 찬성파와 반성파가 극렬 대치하는 가운데 총통이 등장한다. 드디어 여야 난장판이 시작될 때 총통이 국회의장을 물고, 국회의장이 국회의원을 물고, 국회의원이 또 다른 의원을 물면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의사당에 퍼지기 시작하고, 좀비가 되어간다. 급하게 국회의사당을 폐쇄하자, 이제 안에 갇힌 국회의원, 보좌관, 기자 등등이 살아남기 위해 대발광을 펼치기 시작한다.
영화는 희화화된 국회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민의의 전당이자 정의의 보루인 국회는 보스와 하수인의 구도로 짜여있고, 입법과정은 뒷돈과 밑거래의 결정판이다. 총통도, 의장도, 의원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죽어도 찬성!”, “죽여도 반대!”만은 부르짖으며 격돌한다. 그야말로 ‘좀비내전’이라 부를만하다.
그럼,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를 물리칠 마지막 한 수는 무엇일까. 영화에서는 어수룩하기 그지없는 국회경호원 왕유위의 활약이 펼쳐진다. 이름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바로 중국(청)이 외세의 개입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변법자강’(變法自彊)을 주장했던 정치사상가 ‘강유위’(康有爲)에서 따온 모양이다. 과연 대만의 엉망진창 국회를 일신하여 새로운 의회상, 민주주의의 전범을 수립할 수 있을까. 백년하청이리라. 영화는 끝까지 물고 뜯는 여야 격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영화인 셈.
좀비영화는 많지만 이렇게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좀비영화는 처음인 것 같다. 좀비들의 움직임은 오로지 국회의원을 희화화하고 난장판을 극적으로 꾸미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 덕분인지 이 영화는 작년 대만 금마장영화시상식에서 최우수액션상을 받았다.
영화 시작 전 “심약자 관람주의” 같은 뻔 한 경고문과 함께 이런 경고문이 뜬다. “정부 잘못 고르면 4년이 괴롭습니다!”고. 어쨌든 이 영화는 정치에 대한 풍성한 블랙코미디임에 분명하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5월 2일과 6일, 두 차례 상영된다. 영화제 기간에는 OTT서비스 웨이브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참, 영화에서 뜬금없이 보양식이라며 ‘18동인 상기탕’이란 것을 마시는 장면이 있다. 영화에 어울리는 기가 막힌 PPL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