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은 이기심으로부터 태어난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순위로 삼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에 무심해지는 순간 오만과 편견이 자라난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는 '오만과 편견'의 교훈처럼,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들을 하나의 권위로 여기며 휘두르는 행위는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가치들을 송두리째 파괴한다.
영화 '학교 가는 길'(감독 김정인)은 장애 학생을 둘러싼 혐오 앞에서 그들의 부모님들이 단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길고 긴 여정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강서 특수 학교인 서진학교가 설립되는 과정 속에서 장애 학생 부모님들이 겪어야 했던 혐오와 차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화는 아이들이 활기차게 웃으며 등교하는 모습으로 시작되지만 이내 설명 장면을 통해 2020년 기준 전국 182개 특수 학교 모두 과포화 상태이며 재학생의 46%가 왕복 1~4시간 거리에서 통학하고 있다는 씁쓸한 현실을 알린다.
더불어 장애 학생의 부모님들이 무릎을 꿇는 사진으로 이슈가 된 2017년 9월 토론회 현장부터 2020년 3월 서진학교가 문을 열던 순간까지 특수 학교 설립을 둘러싸고 발생했던 논란과 갈등을 면밀하게 보여준다.
작품 속에는 2017년 토론회 당시 특수 학교와 한방 병원 설립을 두고 치열하게 토론했던 당시의 기록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강서구 가양동이 허준의 탄생지라는 점을 들어 한방 병원 건립에 향한 이상을 품었던 주민들은 토론회에 참가해 장애 학생의 부모들에게 막말을 거침없이 던진다.
학교라는 이름 앞에 '특수'라는 단어만이 붙었음에도 이를 혐오 시설로 규정하며 불만을 쏟아내는 이들은 부모님들을 옹호하는 이들을 향해 "도덕 책 보는 그런 시대인 줄 알아요?"라고 따져 묻는다. 이토록 거친 혐오의 물결 앞에서 부모님들은 자신이 받은 상처보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홀로 혐오를 헤쳐나가야 할 아이들에 대한 걱정뿐이다.
'학교 가는 길'은 단지 장애 학생 부모의 입장만 담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갈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정부의 주거 정책과 사회 시스템을 추적하고 혐오의 근원을 살펴본다. 혐오 발언을 쏟아냈던 주민들의 입장을 조명하며 어떠한 배경이 있었는지, 강서구의 입지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되짚는다.
그럼에도 그러한 이유들이 혐오와 폭력의 정당방위가 될 수는 없다. "감성에만 치우쳤다"며 시위하는 사람들의 행위와 그로 인해 장애 학생의 부모님들이 받은 상처들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질 리 없기 때문이다.
최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시각장애인 판사 김동현이 자신의 공부를 위해 도와준 당시의 친구들에게 띄운 영상 편지가 화제를 모았다. 그는 "약간의 친절을 베풀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이 모여 내게 살아갈 힘을 줬다"며 주위 사람들을 향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시청자들이 그 장면에서 큰 감동을 받았던 이유는 우리가 사람으로서 타인에게 바라는 것이 어마어마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저 작은 친절, 누군가를 위한 배려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학교 가는 길'의 인터뷰와 영상에서 등장하는 장애 학생의 부모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들이 없어도 남겨진 아이들이 웃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큰 혜택이나 복지를 주는 것이 아닌, 그 아이들이 걸어갈 일상을 밝게 해줄 타인들의 작은 친절들이 존재하는 세계다. 좋은 세상은 우리가 향하지 못할 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5월 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