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시대의 거울이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환기하는 힘이다. 임흥순 감독의 작품들에는 그러한 책임감과 진심이 담겨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시네마프로젝트인 임흥순 감독의 작품 ‘포옹’은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영상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국가에서 직접 찍은 이미지와 사운드를 재구성한 영화다. 꿈이라는 주제로 묶인 이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 속에서 우리가 마주한 지금의 이야기들을 되짚어본다.
더불어 그는 지난 28일 개봉한 ‘좋은 빛, 좋은 공기’를 통해 서로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일어난 항쟁의 흔적, 사람들을 움직이고 투쟁하게 했던 국가 폭력의 기억을 되돌아봤다. ‘포옹’과 ‘좋은 빛, 좋은 공기’, 그가 이 두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지켜보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위안을 선사했다.
Q. 전작 ‘위로공단’, ‘비념’ 등 사회적인 이슈들을 많이 다뤄왔다. 이번에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주제로 한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의 ‘포옹’이라는 작품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찾아왔는데, 이러한 작품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코로나 사태가 이제는 일상이 되어서 사람들이 오히려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다. ‘현실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다 영화인들을 위한 프로젝트가 있었고 선정이 되어 짧은 단편을 만들었다. 지인들 중심으로 촬영했고 음악 감독, 배우, 감독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들이 기존에 찍었던 영상을 받았다. 이 자료들을 확장해서 전주국제영화제 측과 함께 이 작품을 만들게 됐다. 영화 관계자들, 해외 지인들에게 연락해 9개국에서 온 영상들을 받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총 93분의 영상을 완성했다.
Q. ‘포옹’의 내용을 구성하기 위해 어떠한 주제들을 작품 속으로 끌고 왔나?
팬데믹 기간에 꿨던 꿈, 현상과 일상에서 겪게 되는 이상한 일들, 지역의 민담 같은 것들에 관해 질문했다.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직접적인 피해 사례, 고통스러운 사례를 보여주는 것보다 새로운 삶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에 관해 다뤘다. 이 작품을 보면 ‘힘들고 보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보다는 ‘일상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Q. ‘포옹’도 지난 28일 개봉한 ‘좋은 빛, 좋은 공기’도 편집 방식이 인상 깊었다. 특히 ‘좋은 빛, 좋은 공기’의 경우, 김점례 어머님이 돌아가신 아드님 얼굴 반쪽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 다음 신으로 아르헨티나의 한 벽면에 걸려 있는 얼굴 형상의 그래피티를 비추는 장면이 등장하는 흐름이 인상 깊었다. 편집 방식에 있어서 특별하게 신경 쓴 부분이 있나?
두 작품 모두 화려하거나 미학적인 것보다는 기본과 일상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창작자로서의 욕망보다는 어떻게 하면 현실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화려한 표현도 중요하지만 기본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는지가 중요했다. 말해준 장면은 아르헨티나 군부정권 당시 감금 장소 중의 하나였던 옛 해군기술학교(EX-ESMA)에서 찍은 것이었다. 이제 그곳은 기억의 공간으로 바꿔서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장소가 됐고 벽면에 실종자 사진들이 붙어있다. 그곳에서 촬영하다 얼굴 그림이 나무에 걸려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김점례 어머님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촬영할 수 있었다. 그 장면이 개인적으로 아르헨티나 상황과 광주 민주화운동이 만나는 지점이기에 상징성이 있는 부분 같다. 이런 이야기들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고민하다 보니 그런 풍경들이 보였다.
Q. 이처럼 고통스러운 역사적 사실이 등장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장면들이 자극적이지 않아 오히려 진심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부러 눈물을 강요하는 신이 없어 보기 편안했다.
신파를 많이 뺐다. 편집 기사님이 냉정하게 편집을 해주셨다. 눈물을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당당한 표정 안에서 슬픔이 전달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직접 느끼고 상상력을 부여할 수 있는 편이 더 중요하다. 감정은 순간이다. 이성적인 거리감을 만들어주는 방식이 울림을 떠나서 관객들에게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같다.
Q. 이 작품은 여성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전작들에서도 여성들을 중점적으로 섬세하게 다룬 전작들을 완성해왔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그 노력이 눈에 띈다. 어떻게 당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었나?
목요일마다 열리는 오월 광장에 가서 시위도 보고 촬영도 했다. 오월 광장 어머니회 회장 에베 데 보나피니의 인터뷰도 진행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광주가 다시 떠올랐다. 한국에 와서 광주 오월 어머니집을 찾아갔고 정현애 관장님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광주 트라우마센터나 광주 오월 어머니집에 계실 거라고 생각했던 오월 어머니들이 옛 전남도청을 지키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농성 중인 어머니들을 만나면서 인터뷰하는 것이 여러모로 쉽지 않았지만 생존자 인터뷰와 함께 진행했다.
Q. 그 당시는 지금보다 더 권위적인, 성차별적인 사회였기에 여성으로서의 힘듦이 무겁게 다가오던 때였다. 작품을 보면서 그 여성들이 더욱 경이롭게 느껴졌다.
‘비념’을 제작할 때도 느꼈다. 여성들은 사건하고 거리를 두면서 보면서 차분하게 진행을 하고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 같다. 당시의 성차별적인 남성들보다 용기를 내고 행동하셨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사회적 평가가 저평가된 부분이 있다. 사진에 찍히지 않았고 보이지 않았지만 뒤에서 용기를 내고 희생하고 역사를 만들어왔다. 그런 바탕 위에서 우리가 있는 것이다.
Q. 요즘에는 더욱 영상이 세대 사이를 이어주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포옹’이나 ‘좋은 빛, 좋은 공기’ 또한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작품 같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또 다른 제작 계획이 있나?
계획이 없는 것이 계획이다. 생각한 대로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지 않나. 계획과 다른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기에 계획 없이 지내면서 상황들에 적응하는 것이 나의 작업 방식인 것 같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현실을 직시하고, 마주해서 넘어서는 방법들을 영화로 보여주고 싶다. 일상을 제대로 보고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을 때 큰 일들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학교에 나가고 있어서 더 느낀다. 나도 여전히 배우고 있지만 20대가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전하는 중간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Q. ‘포옹’을 통해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아온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작품을 찾아올 관객들에게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이 작품은 미래에서 보는 현재의, 현실의 풍경 같다. 어떻게 보면 부담스럽지 않고 재밌다.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도 든다. 재밌으면서도 현실을 재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현실에서 각자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 새로운 삶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