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 집을 떠나지 않아!"
자신의 기억이 마치 태어난 곳이 없었던 것처럼 뒤죽박죽이 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있을까.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도, 소중했던 순간들도, 자신을 구성한 가치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과정을 겪는다면 그 사실을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인정해야 할까.
영화 '더 파더'(감독 플로리안 젤러)는 안소니(안소니 홉킨스 분)가 치매로 인해 기억이 뒤섞여가는 과정에서 현실을 혼동하며 사랑하는 딸 앤(올리비아 콜맨 분)과 갈등을 쌓는 과정을 보여준다.
안소니는 자신을 챙겨주려는 딸 앤의 관심이 달갑지 않다. 고집불통인 그는 딸이 부른 도우미를 쫓아내거나 그가 자신의 물건을 훔쳤다고 고발하며 딸을 골치 아프게 만든다.
그는 집에서 앤의 남편이라 주장하는 남성에게 누구냐고 물어보고, 하물며 장을 본 후 돌아온 앤의 얼굴 또한 알아보지 못한다.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 안소니는 자신의 기억에 대해 의심하고 가족들에게 감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표현한다. 사랑했던 자식에 대한 기억뿐만 아니라 그들의 얼굴과 모든 사실에 대해 의심을 시작하는 안소니는 극단적인 감정 기복을 보이며 가족과의 관계를 파괴해나간다.
이러한 서사가 담긴 모든 장면들은 안소니 홉킨스의 훌륭한 연기력과 더불어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훌륭한 연출력으로 실감 나게 표현됐다. 특히 작품 중간중간 집안의 빈 곳들을 비추는 장면들은 그들 사이의 감정을 소강시키며, 동시에 동일한 공간 안에서 그들 사이를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들은 주인공 안소니의 마음을 더욱 깊게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자신을 잃어가는 것을 눈치챈 후 불안한 마음을 가족들에게 쏟아낸다. 자신을 무력화시키는 가족들의 관심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집을 향한 집착을 표출하고 가족에 관한 기억들을 날카롭게 뱉어내며 균열을 만들어낸다. 너무나 사랑하지만 미워하게 되는, 미워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아버지를 향한 가족들의 시선은 따뜻하면서도 차갑다.
끝내 갈등의 절정에서 안소니는 인정하게 된다. 간호사의 입을 통해 잃어버렸던 기억을 마주하는 그는 더없이 공허한 눈빛을 보인다. 이는 작품 초반부에서 "나는 어떻게 되는 거냐?"라고 묻는 그의 눈빛과 닮아있다.
"내 잎사귀가 다 지는 것 같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도통 모르겠어"라며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이때까지 보여온 집착에 관한 미스터리가 풀린다. 모든 기억들이 손에 쥔 모래처럼 흩어지는 것을 허망하게 지켜본 그는 자신이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영역에 집착했던 것이다.
결국 관객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그의 눈빛 앞에서 그가 느꼈던 감정의 결정체를 가슴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지키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가 마지막으로 잊고 싶지 않았던 기억, 바로 '아빠'라는 자신의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