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가 말했지. 너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너 그거 알아야 돼."
어릴 적 옛날 이야기를 읽으며 쌓았던 '권선징악'에 관한 신뢰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점점 옅어진다. 세상에서 발생한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그 가해자가 책임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운 좋게 죄를 저지른 이가 벌을 받더라도 그 피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합리한 인생의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타인에 의해 누군가의 인생이 암흑으로 점철되는 것을 목격하거나, 혹은 그 피해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 그 버거운 삶을 어떻게 지고 나아가야 할까.
영화 '비밀의 정원'(감독 박선주)은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던 한 부부가 아내의 이야기를 알게된 후 맞이하는 갈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남편 상우(전석호 분)는 이사를 간 후 새로운 집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아내 정원(한우연 분)과 행복한 일상을 꾸리려 하지만 그들의 관계를 흔드는 전화 한 통이 도착한다. 그 전화는 10년 전 정원의 성폭행 가해자가 잡혔다는 내용이었다.
작품 속에는 성범죄 피해자가 시간이 지나도 받는 고통에 관해 담겨 있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그 날의 기억의 떠올리며 힘겨워하는 정원의 모습과 더불어 결국 집으로 다짜고짜 찾아와 남편에게 강제로 범죄에 관한 사실을 알리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결국 정원은 갑작스럽게 사실을 안 남편과 함께 어색한 분위기로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다시 쓰게 된다.
정원의 고통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실이 알려진 후 부부 사이의 달달했던 일상은 없어지고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분위기만이 남는다. 상우는 어떻게 말을 꺼낼지 몰라 망설이고 결국 대화를 시도하지만 정원은 이를 차갑게 거절한다. 이어 정원은 자신을 데리러 온 남편에게 왜 평소와 다르게 구냐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싸늘한 공기만이 가득 메운 둘 사이는 점차 갈등으로 채워진다.
정원이 감추려고 했던 과거의 상처는 남편을 넘어 모든 가족에게 영향을 미친다. 고등학생이 된 동생이 정원에게 찾아오고 그는 꾀병을 부려 엄마가 자신을 병원에 데려갔던 날 혼자 남겨진 정원에게 성범죄가 벌어진 사실에 관해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온 사실을 밝힌다. 그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냐며 정원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를 들은 정원은 괴로워한다.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토로한다. 정원은 상우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해야 했다며 자책하고 상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한심해하며 정원의 가족들은 성범죄가 벌어진 이유에 자신의 잘못이 관여됐다고 반복적으로 의심한다.
"너가 정원이라면 어땠겠어?" 작품 중반에서 이모부가 갈등하는 상우에게 던진 질문이다. 자신을 지난 10년 동안, 어쩌면 앞으로 평생 고통에 시달리게 만들 가해자가 고작 징역 5년의 선고를 받는 것을 목격한 정원의 마음은 극중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작품 속에는 '수치스럽다'는 정원의 대사가 등장한다. 성범죄를 당한 사실이 비밀이 되는, 누군가에게 알리지 못할 굴욕이라고 생각하는 정원의 마음이 담긴 표현이다. '수치'는 가해자가 말해야 할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말하는 세상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기에 이 작품은 더욱 강조한다. 불합리한 아픔을 치유하는 이들에게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어"라고 외친다. 더불어 삶을 살아가며 부당한 일에 부딪혀 삶의 중심을 잃어버릴 때도 있지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힘과 응원이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마치 "내가 걱정하는 건 너야"라고 말하는 이모부처럼, "네가 잘못한 것은 없어"라고 말하는 이모의 말과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