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이 세상에는 저마다 다양한 특성을 지닌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타인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교류의 과정은 쉽지 않다. 특히 신분이 정해져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의 척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과거의 인물들에게는 더욱 힘든 일일 것이다.
영화 '자산어보'는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세상의 끝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이 집필한 해양생물도감인 자산어보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준익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설경구는 정약전 역으로, 변요한은 그를 돕는 어부 창대 역으로 등장한다.
바다 생물에 매료되어 창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지식에 대한 갈망이 컸던 그는 정약전에게 책을 읽는 법을 배우는 조건으로 끝내 그의 거래 제안을 수락한다. 그렇게 창대와 정약전은 서로를 돕는 스승이자 제자의 관계로 변한다. 정약전과 창대는 부단히 타인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통해 비로소 더 큰 세상을 보게 된다.
성리학이 무조건적으로 나라의 근간이 된다고 믿는 창대의 이념과 사학죄인으로 취급 받는 정약전의 이념이 부딪히는 대립 신 또한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서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 서로를 비난하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 끝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참된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은 감동을 선사한다.
'자산어보'는 흑백영화로 제작됐지만 색의 한계를 뛰어넘은 영상미의 절정을 자랑한다. "흑백의 장점은 선명성"이라는 말처럼 오히려 흑백이기에 구현 가능한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한 편의 수묵화처럼 담긴 자연의 풍경과 물결의 선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또한 작품 속에 나오는 다양한 해양 생물과 그것을 요리하는 장면들은 마치 쿡방, 먹방처럼 관객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흑백 영화임에도 스크린을 거침없이 뚫고 나오는 해양 생물의 싱싱함과 바다 내음 가득한 요리의 향기는 경이로울 정도다.
더불어 주연 배우들 이외에도 배우 조우진, 류승룡, 최원영, 정진영, 김의성 등 연륜 있는 연기파 배우들의 우정 출연 또한 쏠쏠한 볼거리다. 이들의 훌륭한 연기는 말할 것도 없으며 작품이 전개되는 동안 적재적소에 깔끔하고 담백한 연기를 더해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우리는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타인과의 갈등을 빚기도, 후회할 만한 상처의 원인들을 서로에게 전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산어보'는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타인을 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때로는 그 과정이 험난하고 긴 노력이 필요한 일일지라도 우리는 타인을 통해 더 확장된 세계를 볼 수 있다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