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다. 인간은 시간을 돌릴 수 없고, 고통이라는 억겁의 시간을 뛰어넘을 수도 없다. 그러니 무언가 혹은 누군가의 상실을 이기는 마음은 단단해지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영화 ‘아무도 없는 곳’(감독 김종관)은 소설가 창석(연우진 분)이 상실을 경험한 여러 인물들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심적 변화에 관한 이야기다. 작품 속에는 김종관 감독의 섬세한 묘사가 쌓아 올린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실제지만 가공된 것 같은, 가공된 것 같지만 실제인 것 같은 다양한 과거를 품고 있는 이들이다.
극 중 창석은 아이를 잃은 후 아내와 이혼해 상실의 늪에서 고통받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한 창석이 만난 주은(이주영 분)은 교통사고를 당한 적 있지만, 그 상처를 문신으로 가리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성하(김상호 분)는 아픈 아내를 보살피고 있으며 유진(윤혜리 분)은 과거에 만난 남자친구와의 일을 잊지 못한다. 이들은 각자 상실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만남의 과정들을 통해 창석은 내적인 동요를 겪는다. 우연히 카페에서 성하를 만난 창석은 그에게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 함께하기 위해 구비한 청산가리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성하에게 "안 좋은 선택"이라고 조언하지만 성하가 병원에서 온 전화에 한 눈이 팔린 사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청산가리를 자신의 주머니에 몰래 집어넣는다.
집에 돌아온 그가 한참 동안 청산가리 앞에서 망설이는 모습은 희망이 저마다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아내가 병을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한 성하가 품은 희망, 그리고 창석이 꿈에서 맛본 재결합의 희망은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라기보다는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재앙 중 하나에 가까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은 ‘Shades of the Heart’, ‘마음의 음영’이라는 뜻이다. 마음의 그림자로 인해 생이 잠식되는 경험을 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작품이다.
‘아무도 없는 곳’은 억울하고 분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흘러간다는 사실을 덤덤히 말한다. 우리의 삶에는 대부분 기적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 않으며 모든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불합리한 이야기도 가감 없이 꺼낸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울한 이야기만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고통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상실을 마주하는 방향을 창석의 심적 변화를 따라가며 제시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를 깨닫게 만든다. 모든 일은 공존하기에 그 수평을 지키고 있으며 우리의 상실은 누군가의 존재에 의해 태어난다고. 마치 우리가 과거에 빛으로 인해 그림자를 알게 되고, 삶을 통해 죽음을 돌아볼 수 있었듯 말이다. 존재가 있었다면 언젠가 상실이 올 수밖에 없으며 그 고통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위로의 메시지다.
‘아무도 없는 곳’은 우리의 괜찮지 않은 마음이 편히 존재할 수 있길 바라는 위로가 담겨 있다. 그러니 괜찮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작품을 권한다. 부재가 만들어낸 버거운 빈자리가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다면 이 작품을 통해 조금이나마 마음에 위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