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재는 좋다. 하지만 작품성을 논하자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작품이 있다. 영화 '스파이의 아내'(감독 구로사와 기요시)는 전운이 감돌던 1940년대 무역상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 분)가 만주국으로 향한 후 관동군 731부대의 만행을 목격하게 되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아내인 사토코(아오이 유우 분)의 의심을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NHK TV 드라마를 영화로 다시 만든 작품으로 2020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1940년대 당시 포로들에게 생체 실험을 시도한 일본이 비난 받을 소재가 담긴 드라마가 일본 내 방송국에서 제작되었다는 점부터 박수 받아 마땅하지만 작품성에 대해서는 몇가지 골치아픈 의문이 떠오른다.

첫 번째로, 작품을 애매하게 만드는 요소는 아오이 유우의 연기다. 과거 시대상을 담아낸 작품이고 연극처럼 연출한 감독의 의도가 과도하게 드러나지만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게 받아들여야하는 아오이 유우의 과한 연기톤과 배경 설정은 무언가 모를 거부감을 이끌어낸다.
두 번째로, 장르가 불분명해지는 전개에서 떨어지는 몰입감이다. 남편이 자신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에 그는 무조건 남편의 다른 여자에 대한 의심부터 드러낸다. 이 의심은 작품의 중반부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당시의 시대상을 비추려했던 의도는 알겠으나 이로 인해 작품의 초중반은 시대물보다는 그저 치정으로 얼룩진 '사랑과 전쟁'에 가까운 전개로 이어진다. 서스펜스와 멜로, 혹은 치정극 사이에서 제대로 방황하는 서사는 관객들에게 혼란함을 안긴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인 사토코의 여성상 설정에도 의아한 점들이 발견된다. 사토코가 결국 '안온한 삶만 살아 세상에 무지하고 순진하며 남편에게만 기대는 여성'으로 표현되는 장면은 만주에 다녀온 후 중2병에 걸린 것 같은 조카 타케시타 후미오(반도 료타 분)와의 대립 신에서 드러난다. 남편을 의심하고 진실을 찾으러 온 사토코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고 무지하다고 종이를 다짜고짜 던지는 신은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할 정도다.
끝내 진실을 안 사토코의 행보 또한 의문스럽다. 남편의 행위에 동참하는 계기 또한 자신의 각성에 의해서가 아닌, 다른 여자가 아닌 자신을 선택했다는 뿌듯함처럼 느껴지는 장면도 등장한다. 그는 진실을 안 뒤에도 다른 여자가 아닌 자신과 미국에 가게 되었다는 생각에 만족하고, 미행을 따돌릴 때도 그것이 마냥 하나의 놀이인듯 꺄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시대에 의한 각성이 아닌 그저 '남편과 함께 있고 싶어서'를 이유로 반역자가 되는 위험을 감수하는 모습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말하기에는 너무 먼 길을 떠나버린 대목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첫 시대물이자 베니스국제영화제 수상작이라는 빛나는 타이틀이 달린 작품이지만 기대가 크다면 실망도 큰 법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소재는 좋으나 그 이상의 작품성을 논한다면 극장에서 선택해야 할 영화는 이 작품이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