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들이 틀렸다면요?"
신념과 진실은 절대적인 정의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식에 따라 상대적인 개념이 된다. 그 신념으로 인해 누군가는 진실을 만들어내기도, 또한 누군가는 진실을 찾기 위해 신념을 바꾸는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그 인과 관계 중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를 따질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 끝에 책임이 남는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념과 진실을 논할 때 누구보다도 신중해져야한다.
'모리타니안'(감독 캐빈 맥도널드)는 9.11 테러 핵심 용의자로 지목되어 기소도, 재판도 없이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슬라히(타하르 라힘 분)를 구하기 위해 인권 변호사 낸시(조디 포스터 분)가 나서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능력 있는 군검찰관이자 친구를 9.11 테러로 잃은 카우치(베네딕트 컴버배치 분)는 그의 유죄를 확신하지만 점점 실체를 드러내는 국가 기밀의 충격적 진실에 고뇌에 빠지게 된다.
이는 당시 크게 논란이 된 관타나모 수용소 고문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 만큼 슬라히가 관타나모에서 14년 2개월 동안 수감된 과정에서 어떠한 상황에 처했었는지를 생생히 드러낸다. 단순히 인권을 유린한 사건을 넘어 9.11 테러 이후 서로를 향해 빗발치던 혐오와 정치적인 공작, 그리고 사상의 싸움에 대한 민감한 주제도 가감 없이 짚어낸다.
국내에서는 셜록, 닥터 스트레인지 주인공으로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제작 및 출연을 맡았기에 더욱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을 통해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조디 포스터의 연기도 일품이다.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을 포기하며 살아가야하는 인권 변호사 역할을 훌륭히 연기해냈다. 특히 일할 때는 단호하지만 약자를 대할 때는 누구보다도 온기 어린 시선으로 상대방을 감싸 안는 낸시의 모습이 드러나는 장면들은 조디 포스터의 열연으로 인해 더욱 절절히 다가온다.
연출 또한 '모리타니안'의 훌륭한 작품성을 보여준다. 특히나 국가에 의해 검열되어 많은 부분이 삭제된 기밀 문서처럼, 날짜를 알아볼 수 없고 시간 순서를 파악하기 힘든 사건들을 과거와 교차하여 보여주는 영상은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치의 지루함도 유발하지 않으며 논리정연하게 과정을 나열하고 그 속에서 슬라히가 겪었던 울분을 생생히 보여준다.
'모리타니안'은 진실과 신념의 집요한 싸움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사실들이 다 진실인가', 그리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것인가'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관타나모 사건으로 인해 각기 다른 이유로 자신의 신념과 갈등한다. 하지만 이 모든 갈등의 끝에는 결론이 존재한다. 기소를 고민하는 카우치는 9.11 테러에 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따지는 동료에게 "누군가겠지. 아무나가 아니라(Someone, not just anyone)"라고 일침을 가한다. 낸시는 자신을 비난하는 여론에게 자신은 테러리스트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보호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인생을 마주하는 모습은 신념과 진실이 대립하는 과정이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하나의 단계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운이 좋다면 서로에 대한 공감과 구원, 그리고 용서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세지 또한 잊지 않는다. 마치 긴 세월의 구금 생활에도 불구하고 슬라히가 자신의 재판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자신을 가둔 이들을 용서하며 남긴 말처럼 말이다.
"아랍어로 '자유'와 '용서'는 같은 단어다. 그러기에 난 갇힌 이곳에서도 자유로웠다. 그러니 신이 당신을 용서하고 함께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