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작
후효현과 함께 대만의 거장급 영화감독 양덕창(楊德昌,양더창/에드워드 양)의 영화 <마작>(麻將,1996)이 다시 한 번 한국 극장에서 공개된다. 이미 영화제 등 몇 차례 기회를 통해 공개되었던 작품으로 이번에도 양덕창 회고전의 일환으로 극장(메가박스)에 내걸린다. <마작>은 <독립시대>, <하나 그리고 둘>과 함께 양덕창의 이른바 ‘신(新) 타이베이 3부작’으로 불린다. <마작>은 양 감독의 다른 작품이 그러하듯이 흔들리는, 위태로운, 방향감각을 상실한 섬나라 대만 사람들의 불안정한 삶의 이야기한다. 이번에는 하릴없이 인생을 낭비하는 젊은이들이 주인공들이다. 불한당이며, 한량이며, 꿈이 없는 존재들이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악동 4인방은 이름보다는 별명으로 불린다. 금붕어(紅魚), 룬룬(綸綸), 치약(牙膏), 홍콩(香港)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대만의 한 갑부의 아들이 납치되었고, 거액을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는 자막이 뜬다. <마작>은 그렇게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범죄에 빠져드는 이야기이다.
마작
네 친구들은 ‘하드락’ 카페에서 프랑스 여자 ‘마르타’(Marthe)를 처음 보게 된다. 마르타는 남친 마커스를 찾아 대만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마커스 곁에게는 이미 딴 여자가 있다. 네 친구는 마르타를 집으로 데려온다. 속셈이 있다. 자기들의 노리갯감이자, 콜걸로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일당 중 유일하게 영어를 그럭저럭 하는 룬룬이 마르타를 불쌍하게 여긴다. 함께 어울려 다니며 못된 짓을 하는 네 친구에게는 각자 그럴듯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금붕어’의 아버지는 여자문제로 사업을 말아먹고는 사채 때문에 도망 다니는 실정이다. ‘홍콩’은 반반한 얼굴로 여자들을 유혹하여 일당의 노리개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치약’은 ‘작은 부처’라 속이며 풍수지리를 들먹이며 사람들을 현혹한다.
그런데 진짜 타이베이의 악당이 총을 들고 ‘금붕어’를 납치하려고 한다. 부유한 아버지의 돈을 뜯어낼 요량이었지만 룬룬과 마르타를 납치하며 일이 꼬인다. 결국 한심한 자기 아버지보다 친구를 생각한 금붕어는 아버지가 숨어있는 곳을 찾아가지만 아버지는 이미 새 애인과 함께 자살한 뒤였다. 그제야 금붕어는 대오각성하여 총을 들고 복수 아닌 복수에 나선다. 그렇게 경찰서에 모인 사람들. 마지막에야 룬룬은 자신이 마르타를 끝까지 보호해야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도로에서 다시 만나 포옹하고 키스한다.
마작
양덕창 감독의 영화는 대만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주절주절 만장체로 풀어나간다. 배우들은 캐릭터에 동화되어 마치 내일 없는 타이베이의 젊은이처럼 질주한다. 네 명의 젊은 친구들은 서로를 금붕어(紅魚), 룬룬(綸綸), 치약(牙膏), 홍콩(香港)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그들이 왜 그런 별명을 갖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젊은이의 한없이 가벼운 존재감이 그렇게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영화 제목 ‘마작’(麻將/ Mahjong)은 무슨 의미일까. 실제 ‘마작’ 장면은 단 한 번 등장한다. 바둑이나 체스 같이 심오한 수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인생의 요체를 은유하려고 했을까. 어쩌면 이들 젊은이의 심리상태인지 모른다. 극중에서 금붕어(紅魚/빨간물고기)가 룬룬에게 하는 대사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무어를 해야지 몰라. 그냥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해라 말해줄 때까지 기다릴 뿐이야.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말해주면 그걸 하게 되는 거야. 왜 그렇게 하냐면 사람들은 실패할 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지. 차라리 자기가 속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라고. 그 말처럼 이 영화에서는 남의 말에 따르려는 사람이 많다. 악당들의 집에 머무르는 여자들도, 소부처의 말도 안 되는 풍수를 맹신하는 사람들도. 어쩌면 그게 ‘마작’의 요체인지 모른다. 자신이 갖고 있는 패의 한도에서, 남의 패를 유추하고, 더 좋은 패를 갖고 싶어 하는. 물론, 룬룬의 선택처럼 마지막엔 사랑이 이긴다...는 것을 당시 음울한 대만의 상황에서 양덕창 감독은 끝까지 꿈꿨는지 모른다.
참, 대만 타이베이에는 1996년에 지하철/전철(臺北捷運/MRT)이 첫 운영되기 시작했다. 건설초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쾌적한 대중교통으로 자리잡았다. 영화에는 건설 장면을 볼 수 있다. 극중 프랑스여자(Marthe) 이름을 두고 하는 개그는 그 연장선이다. (박재환)
▶마작(원제:麻將/Mahjong) ▶감독/각본: 양덕창(楊德昌) ▶출연: 비르지니 르도앵, 가우륜, 당종성, 장진, 왕계찬 ▶수입:에이썸픽쳐스 ▶배급:디스테인션,에이썸픽쳐스 ▶개봉: 2025년 10월15일/121분/15세이상관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