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해피엔딩
지난 6월 열린 제78회 토니 어워드에서 최우수작품상(뮤지컬부문) 등 6개 부문을 휩쓴 화제의 작품 <어쩌면 해피엔딩>을 극장에서 만난다. 이 작품은 최근 유행이 된 공연실황을 담은 것이 아니라 영화버전으로 따로 찍고, 편집한 작품이다. 이원회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신주협, 강혜인이 '어쩌면 해피엔딩'의 또 다른 해석판을 들려준다.
가까운 미래. 서울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무슨 이유인지 제주로의 대규모 이전이 진행되었고 서울의 도로와 주택은 텅텅 비어있다. 이곳 한 아파트에는 오랫동안 인간 주인님을 모시던 로봇인 ‘헬퍼봇5’모델 올리버는 기약 없이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매일 택배를 기다리며, 홀로 충전하며, 노래를 부르며 주인님 제임스를 기다리는 것이다. 어느 날 문을 두드리는 소리. 이웃에 사는 ‘헬퍼봇6’모델인 클레어이다. 충전기가 고장 났다면 도움을 청한다. 그렇게 두 사람, 아니 두 로봇은 달라진 세상, 달라진 환경, 달라진 처지에서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된다. 제주도에 가서 주인님을 찾을 것! 올리버의 기대와는 달리 ‘업그레이드 버전’의 클레어는 그것이 부질없는 짓이란 것을 알고 있다. 이제 오래된 충전기를 안고, 작은 전기자동차를 탄 ‘단종된 모델’의 헬프봇이 먼 길을 떠난다. 모텔에서 어설픈 사람 흉내를 내며 하루를 머물게 되고 ‘터미네이터2’를 보면서 잡담을 나눈다. 그들이 제주도에서 주인님을 만나서 반가운 환대를 맞을까. 반딧불이는 그들에게 영원한 전기를 줄 수 있을까. 둘은 인간처럼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망가져가는 하드웨어와 어쩔 수 없이 메모리를 삭제해야하는 올리버와 클레어. 그들이 맞이하는 결과는 ‘어쩌면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
대중문화의 최첨병 미국에서 열리는 공연예술시상식 중 업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그에 따라 가장 권위(!)가 있다는 상은 에미상(TV), 그래미상(음악), 오스카상(영화), 토니상(공연)을 꼽는다. 'K-'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이들 시상식에서도 한국인의 이름이 곧잘 불린다. 그런데 이중 가장 수상의 가능성이 낮았던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 연극과 뮤지컬을 대상으로 하는 '토니상'이었다. 그런데 올해 시상식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한국에서 출발한 <어쩌면 해피엔딩>이 무려 6개 부문을 휩쓴 것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소규모 창작뮤지컬의 탄생 방식을 따른다. 절박한 기획개발과정, 열정적인 리딩 공연, 희망의 트라이아웃 과정을 거치며 세상에 빛을 발한 것이다. 이 작품은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를 만든 박천휴와 월 애런슨 콤비가 다시 손을 잡고 만든 작품이다. 결국 작품성과 상업성을 인정받고 2017년 대학로 무대에 올랐다. 이후 몇 차례 시즌을 이어갔고,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하게 된 것이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미국인 배우들의 프로덕션이다.
어쩌면 해피엔딩
이번에 개봉된 영화판 <어쩌면 해피엔딩>은 3년 전에 찍은 것이다. 아직 브로드웨이의 희소식이 들리기 전, 무대공연의 극장판이 시도된 것이다. 신주협은 2018년 재연무대에서 올리버를, 강혜인은 2018년과 2020년 공연에서 클레어를 연기했었다. 여기에 유준상이 새로이 ‘인간’제임스로 합류했다. 영화는 뮤지컬의 스토리와 넘버를 적절히 압축하고, 스토리에 변형을 준다. 신주협과 강혜인, 그리고 유준상이 직접 부르는 뮤지컬 넘버는 여전히 아름다고, 애틋하고, 확실히 귀엽다. 만약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팬이라면 장면의 변화와 노래의 변용에 관심이 갈 것이다. 예를 들면 두 헬프봇이 처음 소통하는 '종이컵 전화기'는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후반부에 등장하는 '그것만은 기억해도 돼' 넘버에서는 가사가 조금 바뀌는 식이다. 영화적 재해석을 하다보니 클레어의 사연이 애매모호한 구석이 생긴다. 그냥 메모리 오류구나 생각하는 것이 ‘뮤지컬 팬’의 기대일 듯.
최근 나온 할리우드SF의 영향으로 ‘생각하는 로봇’이나 ‘인간이 되어버린 사이보그’ 같은 굉장히 위험한 미래 담론을 엿볼 수 있지만 이 작품은 그런 암울한 안드로이드의 반란보다는 인간적인 고독감을 더 짙게 전한다. 언제까지 주인님만을 기다리는 충실한 서비스기계의 비자발적 생존-진화본능의 과정을 아름다운 노랫말과 절망의 여정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더 이상 충전할 수 없을 만큼 노후화되었을 때 헬프봇은 주인님을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 건너집 사는 동료 헬프봇을 얼마나 그리워할까. 메모리는 완전히 삭제된 것일까. <어쩌면 해피엔딩>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미련을 가진 로봇의 ‘배터리한정’ 새드 스토리이다. (박재환)
▶어쩌면 해피엔딩 (영어제목: My Favorite Love Story) ▶감독: 이원회 ▶각본: 이원회, 황호길 ▶제작: 이재문, 김수민 ▶촬영: 박치화 ▶음악: 전세진 ▶원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출연:신주협, 강혜인, 유준상 ▶제작: 히든시퀀스 ▶배급:키노필름,아센디오, 영화특별시SMC ▶개봉: 2025년 10월 2일(메가박스 단독)/95분/12세이상관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