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작 '어쩔수가없다' 기자회견 현장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가 부산에서 베일을 벗었다. 베니스와 토론토를 거쳐 오늘 개막하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어쩔수가없다>는 행복한 가정을 영위하던 제지공장 중간관리자 이병헌이 어느날 갑자기 해고통보를 받고는 무너지는 가정과 꺾어지는 자존감을 살리기 위해 ‘잠재력 경쟁자’를 처치하는 눈물겨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늘 낮 영화제 취재를 위해 부산에 온 기자를 상대로 한 시사회 끝난 뒤 박찬욱 감독과 배우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이 열렸다.
박찬욱 감독은 “원작 소설 ‘액스’를 읽자마자 바로 ‘이걸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에는 이미 있는 것과 아직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제가 보탤 수 있는 부분들이 함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코미디의 가능성이었다”며 “무엇보다도 이 소설 자체가 가진 매력이 컸다. 개인적인 이야기와 사회적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었다. 깊게 파고들면서도 확장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영화로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개막작 '어쩔수가없다' 기자회견 현장
베니스와 토론토 영화제에서 공개되면서 극중 ‘제지공장 실직자’에 빗댄 ‘영화인의 위기’가 언급된 점에 대해 박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인의 삶을 떠올리기보다는 각자 자신의 삶을 떠올릴 것 같다. 원작을 읽으면서 쉽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부분 사람들은 종이 만드는 일을 그렇게 중요한 일로 생각하지 않는데, 주인공은 그 일을 자기 인생 자체로 생각한다는 점이었다”며 “영화라는 게 어떻게 보면 삶에 큰 도움을 주는 건 아닐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자신이 가진 걸 모두 쏟아 부어서, 인생을 통째로 걸고 일한다. 그런 이유로 이 이야기에 쉽게 동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병헌도 “이 영화 속에서 종이는 그 쓰임새가 점차 사라져간다. 제지업계와 비슷한 어려움을 영화계도 겪고 있다고 본다. 특히나 극장의 어려움이 크다. 아마 모든 영화인이 공감하는 얘기일 것이다. 후반부에는 인공지능(AI) 관련 얘기도 나온다. 그것 역시 영화인에겐 위기로 느껴질 것이다. 그런 지점에서 이 영화의 이야기와 영화업계 현실엔 공통점이 많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박찬욱 감독과의 작업에 대해 이병헌은 "오랜만에 함께 하는 작업이라 그거 하나만으로도 신나고 설렜다. 이번엔 얼마나 재미있게 작업을 할 지, 이번에도 그런 기대감으로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성민은 "박찬욱 감독님 작품이라는 게 제일 중요했다. 제가 중점을 둔 것도 감독님의 의도와 디렉팅이었다"라고 말했고, 염혜란은 "저도 하기 전에 감독님이 가진 언어나 시선이 워낙 독창적이라 그 부분에서 고민이 많아서 쓰신 책도 다시 보고 작품도 다시 보면서 공부하는 과정을 겪었다"고 밝혔다.
개막작 '어쩔수가없다' 기자회견 현장
박 감독의 디렉션에 대해 손예진은 “감독님은 현장에서 정말 매의 눈으로 배우들의 동선, 워킹, 소품 하나까지도 디테일하게 잡아내신다. 눈은 두 개인데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엄청났다. 그 디테일 속에 배우들의 연기, 톤, 말투, 표정 이런 많은 것들을 주신다.”고 말했고, 박희순은 “박찬욱 감독은 모니터에 굉장히 집중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느끼기엔 너무나 여유로웠다. 심지어 인터뷰지 답을 쓰고 있었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사진을 찍으셨다. 그렇게 여유롭게 딴 짓하는 감독님은 처음 봤다"고 증언하기도.
제지공장의 어려움만큼이나 한국영화의 위기를 느낄 수 있는 영화인의 발언도 있었다. 손예진은 “이번 영화가 7년만의 영화 출연작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자주 영화를 채울 수 있을까가 불안하다. 박찬욱 감독님 같은 감독님들이 작품을 많이 만들어주셔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진 것 같다.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가게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박희순은 “제작보고회때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영화만 찍었다간 굶어죽게 생겼다고 말한 게 현실인 것 같다. 영화인들이 힘을 내서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주시면 관객 분들이 다시 영화를 찾아주시고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어쩔수가없다’를 많은 관객들이 즐겨주셨으면 한다", 이성민은 ”극중 구범모를 연기하면서 저를 되돌아봤었다. 배우라는 직업도 언젠가 대체할 수 있는 대단한 기술이 생긴다면 결국 대체되지 않을까. 그럼 저희도 직업을 잃을 거다. 영화뿐만 아니라 모두가 극 중 실업자들처럼 그런 일을 겪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개막작 '어쩔수가없다' 기자회견 현장
<어쩔수가없다> 후반부에는 자동화된 AI 제지공장의 모습이 잠깐 보인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AI발전은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아직은 발전 속도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조만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혼돈 상태이다. 그런 아이디어를 드라마에 조금 녹여내려고 했다. 각본 마지막 단계에서 집어넣은 아이디어다. 심지어는 편집도 다 끝나고 VFX도 다 끝난 상태까지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켰다.“고 밝혔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인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는 오늘(17일) 저녁 개막식 상영 등 모두 세 차례 상영된다.
[사진=부산국제영화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