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얼굴'
연상호 감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장르물의 화려한 길을 돌아 처연한 한국사회의 민낯으로 돌아왔다. 2억 원이라는 초초저예산으로 완성된 영화 <얼굴>은 1970년대 뒷산에 파묻은 추악한 자화상이다. 백골이 되어 나타난 시신을 앞에 두고, ‘그 때’ 추악했다고 믿었던 우리의 믿음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일종의 오해야. 우리 같이 못 보는 사람은 아름다운 것이 뭔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천생 앞을 못 보는 임영규는 한 평생 도장을 파온 전각(篆刻)의 장인이다. 그런 인간승리를 다큐에 담으려는 야심찬 피디에게 하는 말이다. 그때 아들 동환은 존재조차 몰랐던 ‘엄마’ 정영희가 백골의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는다. 이제 백골이 되어버린 뼈 조각들을 앞에 두고 아버지 임영규와 어머니 정영희의 봉인된 시간, 1970년으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그 때도 앞을 볼 수 없었다. 세상은/한국사회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그리고 그런 사람의 짝이 되는 ‘영희’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인간다큐’식 인터뷰를 통해 조금씩 드러난다.
영화 <얼굴>은 다섯 번의 인터뷰를 통해 인물과 사건이 재구성된다. 갑자기 초라한 장례식장에 나타난 이모들의 무례한 이야기, 오래전 청계천 의류공장에서 정영희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날 것의 기억들, 선의를 애써 외면한 동료 진숙의 회한, 그리고 봉재공장 사장 백주상의 실토까지. 관객들은 세월을 거스르며 듣게 되는 이야기에 아들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얼굴'
글로벌 히트작 <부산행>전에 걸작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내놓았던 연상호 감독은 <얼굴>을 통해 다시 한 번 인간의 심성을 예리하게 캡쳐하는 장인의 솜씨를 보여준다. ‘부끄럽게도’ 관객들은 영화 보는 내내 ‘더럽고’, ‘추악하고’, ‘어떻게 묘사할 수 없는’ 괴물 같다는 정영희의 얼굴이 궁금해진다. 말도 어눌하고, 행동도 어설프고, 모든 것이 처연한 정영희. 하지만 그 폄훼하는 말만큼 착하고, 순수하고, 단순했던 정영희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과연 정영희의 완전한 모습은 어떠할까.
영화는 ’앞을 못 보는‘ 임영규와 ’여러 면에서 어리숙한‘ 정영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언사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무례하고, 배려할 줄 모르고, 사악한 심성을 도드라지게 한다. 단지 변태 백주상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음을.
아름다움과 추함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눈으로 보는 것, 가슴으로 느끼는 것, 남의 말로 판단하는 것. 그 어느 것도 아닐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존재하는 자기 옆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있다는 것.
나이를 든 임영규를 연기한 권해효, 젊은 임영규를 연기한 박정민, 그리고 단 한 차례도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정영희를 연기한 신현빈 등 시대와 캐릭터에 동화된 배우들의 연기가 작품에 완전히 빠져들게 만든다. 완벽한 연출, 뛰어난 연기, 놀라운 이야기의 <얼굴>은 <돼지의 왕>을 밀어내고 연상호 감독 최고의 작품으로 등극했다. (박재환)
▶얼굴 (영제: THE UGLY) ▶각본/감독:연상호 ▶원작: 만화 「얼굴」 (작가: 연상호) ▶출연: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임성재, 한지현 ▶제작투자/제작 양유민 ▶제공/제작: 와우포인트 ▶공동제공/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개봉: 2025년 9월 11일/ 15세이상관람가/103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