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늬
“1980년,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전두환의 등장과 함께 충무로는 새로운 실버스크린의 세상을 열기 시작한다. 확실한 것은 ‘애마부인’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 한국대중문화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애마부인’의 시대를 이해영 감독이 6부작 <애마>로 풀어낸다. 당대 최고의 스타와 야심찬 신인 여배우, 그리고 제작자와 감독이 뒤엉켜 ‘작품’을 위해 마구 달린다. 당돌한 신인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한 당대 최고의 인기 여배우 정희란을 연기한 이하늬를 만나 영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하늬 배우는 출산을 앞두고 있는 관계로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전히 씩씩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정희란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Q. 극중 정희란, 그리고 극중극인 영화 속 캐릭터 ‘에리카’의 목소리 연기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이하늬: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당시에는 ‘서울사투리’ 대사톤이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잘 녹여낼 수 있을까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다. 여배우로서 공식석상에서 하는 말투와 매니저랑 현실감 있는 대사를 나눌 때 톤도 다르다. 서울사투리가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도 해서, 그것들을 잘 버물리면 재밌을 것 같았다.”
Q. 당시의 패션을 소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참조한 게 있다면.
▷이하늬: “레퍼런스를 많이 찾아봤다. 그 당시 의상도 그대로 입어봤다. 고모나 엄마가 입어본 옷들이다. 전형적인 70년대 80년대 느낌이었다. 그 때 예뻤던 옷은 지금도 예쁘다. 유행은 돌고 도는 모양이다. 디테일하게 찾아본 것 같다.”
넷플릭스 '애마'
Q. 신인배우 신주애를 연기한 방효린 배우와는 호흡이 중요했다. 함께 작업한 소감은.
▷이하늬: “방효린 배우는 단단한 배우이다. 함께 연기하면서 놀라운 배우이며, 반가운 배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효린은 극중 인물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런 역할 하는게 얼마나 어렵겠는가. 강단 있는 연기를 해야 할 때 ‘효린아, 이럴 때는 너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치의 욕을, 마음속으로 한 번 해보고 나를 보면서 그대로 연기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정말이지 눈으로 ‘쌍욕’을 받았다. 대단하다.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Q. 그 시절 여배우들은 부당한 일들을 많이 겪었을 것이다. 이하늬 배우의 경우는 어땠는지.
▷이하늬: “아마 저는 그런 부당한 시절의 끝 무렵에 데뷔를 한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감독이 배우에게 그럴 수가 있을까. 마음의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시대가 그랬던 것이다. 폭력이 계속되면 마치 굳은 살 박힌 것처럼 무감각해진다. 화를 내는 것이 하찮은 일이 되어버린다. 그런 기억이 있기에 <애마>가 반가웠다. 그런 시절의 이야기를 무해하고, 건강하게, 코미디로 승화시켜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 반가웠다. 지금은 참지 않아서 문제일 것이다. 하하하. 이런 투쟁의 역사는 인간이 살아가는 한 계속될 것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Q. 이하늬 배우는 <애마부인>세대가 아니니, 혹시 시리즈를 보셨는지. 보고 든 생각은?
▷이하늬: “제가 80년대에 태어난 세대이다. <애마>를 준비하면서 당시의 성애영화들, <애마부인>을 일부러 찾아보았다. 극중 인물의 연기톤을 참고하려고. 그런데 너무 재밌었다. 지금하고는 너무 달랐다. 극중극에서 에리카의 목소리는 원래 박정자 선생님의 톤이다. 저도 그 목소리 톤으로 연습을 했다. 희란과는 다른 톤이다. 아마도 보시는 분이 깜짝 놀라서 코미디로 느끼는 분도 계실 것이다. ‘어머나. 저런 때가 있었구나’하며. MZ세대는 더 느낄 것이다. 어떻게 보실지 흥미롭다.”
Q. 극중 정희란 캐릭터에 공감이 된 지점이 있는지.
▷이하늬: “희란이 다른 동아줄을 찾다가 권도일 감독(김종수)의 새 시나리오 <육식의 밤>을 읽고 완전히 매료되는 장면이 있다. ‘저 잘 할 수 있어요.’라고 매달릴 때 짠하더라. 이해영 감독이 그렇게 말하기도 했는데 나도 그렇다. 배우가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그게 마지막 작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선택하는 것이니 더 절박해진다. 많은 작품 중 하나가 아니라,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희란의 절박함이 이해가 된다.”
Q. 1980년대 여배우, 정희란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였는지.
▷이하늬: “사실 희란은 그 시절에 이미 가진 자이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기 위해 침묵했던 것이 아니라 이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며 투쟁하겠다고 변모하는 인물이다.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 강점기의 독립투사 같았다. 시대마다 그런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있는 것이다. 침묵하지 않는 것, 어떤 식으로든 부당함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인 희란에게 매료되었다. 왜 현장에서 부당한 것들이 없겠는가. 정말 이야기해야할 때는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런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희란이 꿈꿨던 세상이라고 본다.”
“배우는 작품 속 인물을 연기하면 서로 영향을 받는다. 그 캐릭터가 제 안에 들어와서 어떤 화학적인 반응을 보인다. 생각의 확장일 수도 있고, 축소일 수도 있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캐릭터와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내가 희란이라면 어떤 투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애마>를 찍었다.”
Q. 함께 연기한 진선규, 김종수, 조현철 배우에 대해.
▷이하늬: “진선규 배우와는 서로 보기만 해도 웃게 되는 너무 좋은 사이이다. 일을 하면서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너무 좋은 배우이고, 안팎으로 힐링이 된다. 정말 ‘1촬영장1진선규’여야 한다. 이거 찍을 때 <아마존활명수>를 같이 할 때여서 힘들었을 것이다. 고되게 촬영했는데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다. 조현철 배우는 만날 때마다 행복했다. 그냥 ‘애마부인’을 만든 인우감독 그 자체였다. 정말 귀한 존재이다. 김종수 선배는 다른 작품으로 많이 만났었는데 이렇게 진지한 감독역할로 만나니 색달랐다.”
이하늬
Q. 여배우로서의 소감, 출산을 앞둔 산모로서의 생각.
▷이하늬: “분명 어떤 점에서는 살기 좋아진 것도 있고, 또 어떤 점에서는 살기 어려워진 것도 있다. 자식을 낳고 키우는 입장에서는 30년 뒤, 50년 뒤에도 좋아졌으면 한다. 다음 세대가 힘들 것 같다. 전 세대의 투쟁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투쟁해야할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환경문제든 뭐든. 책무감 같은 게 있다. 출산하면서 강해지는 것 같다. 희란의 모습은 저한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한다. 특별히 애정이 많이 간다.”
Q. 감독마다 연출스타일이 다르다. 이해영 감독의 스타일은 어떤가.
▷이하늬: “이해영 감독은 항상 과감하게 결정하고 판단을 내린다. 디테일하면서도 굉장히 과감하다. 작품을 위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작품을 보면서 ‘저것까지 신경을 썼구나’하며 디테일을 챙긴 부분에 대해 탄복한다. 찍을 때도 그렇고. 쉽게 작업하는 사람이 아니다. 배우는 감독을 믿고 따라야한다. 감독님 믿고 절벽에서 뛰어내릴 정도로. 수다도 많이 떨지만 현장에선 녹록치 않은 분이다.”
Q. 최근 세무조사로 뉴스에 등장했는데.
▷이하늬: “사실 법인을 운영하며 한 번도 위법이나 불법을 저지른 적이 없다. 세무조사에서 견해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전액 납부했고, 아직 절차가 남아있어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Q. 이번 촬영에서 어려웠던 것은.
▷이하늬: “제목만큼 말을 정말 많이 탔다. 드라마 <밤에 피는 꽃>에서도 말 타는 장면이 있었다. 승마를 좋아한다. 경험이 있어도 쉽지 않은데 효린 씨는 처음인데도 과감하게 열심히 타더라. 일주일 몇 번씩 세종과 동해, 속초를 갔다. 레슨을 받았다. 내가 굳이 안 해도 되는 장면이었지만 거의 대부분을 배우가 직접 소화했다. 그래서 현실감 있는 장면이 나온 것 같다.”
Q. 이하늬 배우도 영화계가 바뀐 것을 실감하는지.
▷이하늬: “확실히 코로나 이전과 이후가 다른 것 같다. 영화제에 참석하면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밤새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다. 동료들 선배들 만나는 자리가 많았는데 이제는 영화제 가도 그런 자리가 많지 않다. ‘쫑파티’ 이런 것도 조금씩 결이 달라졌고. ‘나때는 말야~’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런 것 같다. 예전엔 정말 어렵게 촬영했다. 그때에 비하면 하나도 힘든 것 아니다. 정말 좋은 환경이다.”
Q. 작품을 위해서라며 감독이 과한 장면을 요구한다면?
▷이하늬: “사실은 무리가 되는 것을 하는 편이이다. 액션 작품 하다보면 많이 다치게 된다. 왜 선배님들이 몸을 사리는지 알겠더라. 부정적인 이슈가 따를 수 있으니. 골병이 든다. 그래도 나는 아직 하고 싶으면 하는 배우인 것 같다. 그런 스타일이다.”
Q. 차기 작품은?
▷이하늬: “<윗집 사람들>이 하반기에 개봉될 예정이다. 그리고 <천천히 강렬하게>(가제)가 지난 6월에 촬영이 끝났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 촬영한 것이다. 내년 초까지는 몸도 리뉴얼하면서 재충전한 뒤, 차기작 할 생각이다.”
“<애마> 클릭하시기 전까지는 ‘애마부인’ 성애영화인가 하고 들어오시는 분이 많으실 것이다. ‘투쟁~’이라며 거창한 말을 했지만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는 그런 드라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편, 출산을 앞두고 홍보활동에 적극 나섰던 이하늬는 <애마> 공개 뒤 딸을 순산했다. 소속사는 공식입장을 “지난 24일 이하늬가 딸을 출산했다. 현재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며, 가족들의 사랑과 돌봄 속에서 평안히 회복 중”이라고 전했다.
[사진=넷플릭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