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1998년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것과는 달리 최우수작품상이 <라이언일병 구하기>가 아니라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게 주어지자 미라막스의 하비 와인스타인의 놀라운 홍보전략에 감탄했다. 이후 이른바 오스카 시즌이 되면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할리우드 스타일의 격전이 몇 달 동안 펼쳐진다. 그 덕분에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진정한 가치가 퇴색된 감이 없지 않지만 이 작품은 확실히 그동안 셰익스피어에 빚진 할리우드의 선물임에 분명하다. 마크 노먼과 톰 스토파드가 시나리오를 맡았던 이 작품은 2014년, 영국 작가 리 홀(빌리 엘리어트)이 연극으로 각색했다. 바로 그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2023년 한국에서 초연되었고, 지난 달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문학성과 귀네스 팰트로우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기대한다면 지금 바로, 예술의전당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라. “동쪽, 해가 떠오른다. 저것은 줄리엣!” 밀로스 포먼 감독의 <아마데우스>를 보면 모차르트 음악의 폭포수에 흠뻑 젖듯이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보면 위대한 작가가 써놓은 언어의 환락에 빠지게 될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세상에 나오기 직전인 1593년 런던. 윌(리엄 셰익스피어)은 작가이며,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대사 한 줄도 써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극장주의 등살에 새 작품 ‘로미오와 에델, 해적의 딸’ 집필에 고민할 때 친구이자 인기 극작가인 크리스토퍼 말로우가 쉽게 생각하라며 조언을 준다. “로미오가 좋겠군. 이탈리아 사람이고 언제나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지. 자기의 적의 딸을 사랑하게 되는 거야. 그 여자가 에델이고. 에델에겐 오빠가 있어. 머큐쇼가 좋겠군.”이라고 아이디어를 건네준다. 그 와중에 윌은 신작에 출연할 배우들의 오디션을 보게 된다. 어중이떠중이 배우들이 모두 말로우 작품의 한 장면을 흉내 낼 때 갑자기 등장한 소년이 ‘베로나의 두 신사’의 한 장면 대사를 읊는다. 자신을 토마스 켄트라고 말한 그 소년은 바로 비올라 드 레셉스. 부유한 상인의 딸이자, 곧 귀족 웨식스와 약혼해야할 비련의 주인공이다. 원고지 첫 줄, 첫 단어가 안 떠올라 몇날 며칠을 전전긍긍하던 윌은 토마스 켄트를 만나고, 비올라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사랑의 열정에 빠지고, 사랑의 소네트를 쏟아내고, 걸작 중의 걸작을 일필휘지로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로미오, 왜 그대는 로미오인가요?”부터 시작하여 “이 키스를 다시 돌려드리죠”까지.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귀네스 팰트로우의 영화를 보았다면 더 재미있을 것이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몇 편 읽어보았다면 더 감격할 것이다. 이 작품은 ‘사랑에 빠진 셰익스피어’가 뮤즈의 영향으로 걸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써내려가는 과정을 판타스틱하게, 할리우드적으로, 그리고 상상의 원고지에 빼곡히 써내려간 것이다. 원고지 여백에는, 무대 커튼에는 <베니스의 상인>과 <말괄량이 길들이기>, <십이야>가 우아하게 스며들어있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살아서 활동하던 시절의 엘리자베스 여왕(1세)의 이야기도 재밌다. 남자만의 영역인 무대 배우를 꿈꾸는 비올라에게 ‘남자의 일을 하게 된 여자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아는‘ 여왕의 처지라니!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영국의 문화적 보물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500년이 지나도 스크린에서, 무대에서 빛을 더하고 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라는 인물과 관련해서는 <서프라이즈>에 어울릴 이야기들이 많다. 엘리자베스 여왕뿐만 아니라 크리스토퍼 말로우와의 관계나 작품의 연관성 등은 흥미롭다. 극장주 필립 헨슬로나 배우 네드 앨린, 극중에서 계속 ’잔혹함‘에 대해 열광하는 ’존 웹스터‘도 당대의 실존인물이다.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장면에서는 <시라노>의 향기도 느낄 수 있다. 로맨스 문학, 문인들의 유혹의 술수는 유사한 모양이다.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이번 시즌 공연에는 이규형, 손우현, 이상이, 옹성우가 사랑에 빠진 대문호 셰익스피어를 연기하고, 이주영, 박주현, 김향기가 돌아가며 무대에 오르고 싶은 용감한 엘리자베스 시절 여인 비올라를 연기한다. 최근 우리 곁을 떠난 연기자 송영규가 페니맨을 잠깐 연기했었다.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 셈이다. 지난 달 5일 막을 올린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9월 14일까지 예술의전달 CJ토월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 ▶원작: 마크 노만, 톰 스톱파드(시나리오) ▶극작: 리 홀 ▶연출:김동연 ▶번역: 이인수 ▶출연: 이규형 손우현 이상이 옹성우(윌리엄 셰익스피어), 이주영 박주현 김향기 (비올라 드 레셉스), 임철형(페니맨), 정의욱 김대종(헨슬로), 이호영 오정택(웨섹스), 말로우(서창원) ▶주최 SBS ▶기획제작:쇼노트 ▶후원:예술의전달 ▶공연: 2025년 7월 5일~9월 14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