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소녀살인사건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부천 초이스: 단편 작품상'을 수상한 <풍류소녀살인사건>은 대만 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는 12분짜리 수작이다. 1980년대 대만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등굣길 교복 차림의 샤오밍과 그 뒤를 따르는 남학생 샤오스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하지만 이들은 학교가 아닌 극장으로 향하고, 상영 전 들려오는 국가 소리에 멈춰 서서 계엄령 시대의 엄숙한 공기를 체감하게 한다.
영화의 백미는 대만 영화사의 걸작 양더창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발칙하게 전복시킨 지점에 있다. 원작에서 14세 소년 샤오스가 소녀 샤오밍을 살해했던 비극적 서사는, 이 단편에서 비키니 차림의 샤오밍이 칼을 들어 남성을 처단하는 복수극으로 재탄생한다. 여기에 1981년 대만에서 상영된 착취 영화 <풍광여살성>(The Lady Avenger)의 문법을 결합하여, 시대의 희생양이었던 여성을 능동적인 심판자로 격상시킨다.
홍웨이팅 감독은 짧은 러닝타임 속에 대만의 암울했던 계엄 시절과 그 속에서 억눌렸던 여성의 욕망을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극장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던 시절의 한국과 대만이 공유하는 기이한 공통점을 환기시키며, 사회적 부조리를 척결하는 소녀의 칼날을 통해 강렬한 페미니즘적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박재환영화리뷰.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