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킹 아이스
싱가포르의 안소니 첸 감독이 중국 연길을 배경으로 그려낸 <브레이킹 아이스>는 길을 잃은 세 청춘이 백두산 천지로 향하는 여정을 담은 매혹적인 드라마다. 투어 가이드 나나(주동우), 결혼식 참석차 연길을 찾은 상하이 금융인 하오펑(류호연), 그리고 나나의 곁을 맴도는 샤오(굴초소)는 우연한 계기로 7일간의 동행을 시작한다. 낯선 조선족 동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이들은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서로의 고립감을 공유한다.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청춘의 미묘한 감정을 절묘하게 포착한다. 피겨 유망주였으나 꿈이 꺾인 나나,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는 하오펑, 정체된 삶에 회의를 느끼는 샤오는 각자의 상처를 안고 백두산으로 향한다. 안소니 첸 감독은 과거의 사연을 안개 속에 둔 채, 흔들리는 현재와 가늠할 수 없는 미래를 응시한다. 세 남녀가 서점에서 책을 훔쳐 달아나는 장면은 고다르의 <국외자들>을 연상시키며 청춘의 찰나적 자유를 예찬한다.
주동우는 현대 중국 여성의 예민하고도 매혹적인 감성을 다시 한번 완벽하게 소화하며 극의 중심을 잡는다. 싱가포르 감독의 시선으로 본 연길의 풍경과 그 속에서 흐르는 단군 신화 이야기는 묘한 이질감과 신비로움을 선사한다. <브레이킹 아이스>는 얼어붙은 삶의 마디를 깨고 나아가려는 이들의 짧고도 강렬한 기록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다시 각자의 길을 가게 될지라도 그 온기만큼은 영원할 것임을 믿게 만드는 작품이다. (박재환영화리뷰.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