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17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이후 6년 만에 할리우드 대작 [미키17]로 돌아왔다. 멀리 보자면 단편 [지리멸렬](1994)부터 영화적 재미와 사회적 풍자를 결코 놓지 않았던 충무로의 봉테일에서 세계적 유명감독으로 위상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사회적 계층질서와 인간의 실존적 문제에 대해 메스를 댄다. 이번엔 할리우드 대자본으로 우주 저 멀리, 니플하임 행성으로 날아가서 인간, 복제물, 외계생물체와의 3종 조우라는 ‘휴먼’드라마를 완성시킨다. 원작은 2022년 출판된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7]이다.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는 지구별에선 별 볼일 없던 루저 청춘이다. 그가 겨우 구한 일자리는 우주 식민개척지에서의 극한직업이다. 여러 문제로 지구에서 더 이상 인류가 살아갈 수 없게 되자 우주 곳곳으로 식민지 행성을 개척하던 시기이다. 미키 반스는 위험한 우주공간에서의 각종 생체실험, 어떤 외계생물이 우글거리고 있을지 모를 행성 개척의 선봉으로 ‘소모’된다. 어떻게? 익스펜더블과 기억저장 테크놀로지로. 2054년이면 가능하단다. 이제 위험한 임무 수행 도중 죽으면, 육신은 ‘(리)프린트’되고, 저장된 기억을 재주입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미키1부터, 미키2, 미키3,…. 미키17이 차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미키7’까지.)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해도 인간의 실수는 생기는 법. 미키17이 죽은 줄 알고, 미키18을 만들어 놓았는데 미키17이 버젓이 살아서 기지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미키 반즈’의 첨단과학 복제품인 ‘미키17’과 ‘미키18’이 동시에, 한 공간에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 상황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무엇보다 최초의 미키 반스와 지금의 복제품은 같은 존재일까, 다른 존재일까. 봉 감독은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를 과연 끄집어낼까. 영화는 우주로 향하는 인류의 절박한 문제에 대해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펼치지 않는다. 단지, ‘선거에 두 번 떨어진’ 정치인(마크 러팔로)이 척박한 우주의 폐쇄된 우주개척기지에서 제2의 정치인생을 펼치는 것으로 축소된다. 몇 명 되지도 않는 지구인(군인, 관료, 과학자, 조종사, 익스펜더블)을 데리고 거창한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는 듯하다. 원작소설은 ‘아바타’나 인디언의 땅을 연상하면 더 나을 이야기이다. 그곳에는 원래의 그들이 오랫동안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주선이 날아오고 화염총과 바주카포와 엑스펜더블을 앞세워 땅을 차지해 버리는 것이다. 지구인(인간) 중심이라면 프론티어 정신이겠지만 누군가에겐 피정복의 처량한 신세이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이곳에서 마샬 부부(마크 러팔로-토니 콜렛)가 소박한 미디어 정치쇼를 펼치고, 미키17은 ‘미키18’과 나샤(나오미 애키)를 둘러싼 ‘하이브리드 막장드라마’를 시작한다.
1억 1800만 달러라는 제작비가 투입된 <미키17>은 봉준호 감독의 전작과는 같은 듯 다르다. 같다면 쉽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지질한 인간존재의 생존의지, 압제적 사회제도 속에서 흐느적거리는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틈틈이 ‘변태적’ 상황과 시니컬한 유머로 무거운 사회드라마의 긴장감을 들어준다. 미키 반스는 나름 열심히 죽고, 열심히 부활하며 열심히 적응하려고 한다. 아마 여친 나샤의 독려와 채근, 사랑이 없었다면 ‘익스펜더블 인피니티’가 될 것이다.
에드워드 애쉬턴의 원작소설(두 권)은 흥미로운 SF 설정을 갖고 있다. 구제불능의 지구를 떠나 우주로 향하는 인류. 충분히 발달한 과학기술은 우주 항행의 테크놀로지와 익스펜더블을 창조해낸다. 지구인의 프론티어 정신보다는 ‘블레이드 러너’에서의 존재문제처럼 실존주의 철학에 발을 거치고 있다. 물론, 소설도 영화도 심각하게 그 문제를 다루진 않는다. 하지만 영화에 빠져들면서 관객은 그 문제에 빠지게 된다. 죽은 미키들의 영혼을 생각할 틈도 없이 새로운 존재에 대한 적응이다. 기지 속 과학자(의료진)들은 ‘프린터’에서 뽑아져 나오는 New미키에 대해서는 갈수록 관심이 떨어진다. 부주의하게 다루는 장면이 계속된다. 어쩌면 다마고찌 신세이다. ‘주인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이고’ 새로 키우면 되는 것처럼. 그러면 최초의 불행한 지구인 미키 반스는 영원히 소멸한 것인가. 소설에서는 ‘테세우스의 배’를 언급한다.
미키17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뒤 귀환하고 그가 타고 온 배는 오랫동안 보존된다. 배가 낡으면 썩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새 판자로 교체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 판자를 거듭 바꾸다가 언젠가는 모든 부품이 교체될 것이다. 그럴 때 그 배는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을까.
‘미키들’은 위험한 미션에 나서기 전, 기억을 벽돌 드라이브에 저장시킨다. 리프린트 될 때는 바로 그 순간까지의 기억을 갖는다. 인간의 실수로 DNA 나선이 하나쯤 꼬일 수도 있고, 의료진이 딴 생각하다가 케이블이 하나쯤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해킹이슈가 생길 수도 있고. 봉 감독은 이런 ‘과학적 고리’는 빼버린다. 그 덕분에 미키17과 미키18에 대한 감정적 분리가 더 수월해진다. 하나가 사라져주면 만사가 해결될 수 있다는. ‘익스펜더블’의 존재목적에 충실하다.
니플하임의 외계생물체(원주민)는 ‘1:1’의 등가교환 방식을 선호한다. 외교정책에 있어서도. 우리 베이비 크리퍼 하나가 잔인하게 살해되었으니, 인류도 하나 죽어줘야 행성의 평화가 유지된다고 말하자, 미키18이 그 문제를 해결한다. 최종 빌런인 케네스 마샬과 함께 폭사하는 것이다. 그럼 ‘1:2’가 아닌가? 봉 감독조차 미키18을 익스펜더블로 생각한 듯하다.
인간문제에 대한 사회학적 관점을 가진 봉준호 감독은 ‘반지하’에서도, ‘설국열차’에서도, 오래 전 ‘지리멸렬’의 캠퍼스에서도 상하층 관계의 부조리와 비대칭의 구조에서 오는 시니컬한 풍자가 장기였다. 1억 1800만 달러짜리 우주선에 탑승하기에는, 신인류를 창조하기는 버거운 미션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위대한 지구종, 한반도인의 위대한 첫 발자국이다. (박재환 2025.3.3.)
▶미키 17 (원제:MICKEY 17) ▶각본/감독 : 봉준호 ▶원작: 에드워드 애슈턴 <미키7> ▶출연: 로버트 패틴슨(미키 반스) 나샤 아자야(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티모) 마크 러팔로(케네스 마샬) 일파(토니 콜렛) 제마(홀리데이 그레인저) 패트시 페란(도로시)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카이 캇츠) ▶촬영: 다리우스 콘지 ▶편집:양진모 ▶음악:정재일 ▶크리퍼 디자인 = 장희철 ▶수입/배급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개봉:2025년 2월 28일//15세이상관람가/137분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