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17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할리우드 대작 <미키 17>은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을 배경으로 '인간의 소모성'과 '실존'에 대한 봉테일 특유의 메스를 들이댄다. 1억 1,800만 달러라는 거대 자본이 투입된 이 작품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하며, 죽어도 다시 '프린트'되는 복제 인간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의 고군분투를 담고 있다.
영화의 핵심 설정은 2054년의 기술력으로 완성된 '익스펜더블(소모품)' 시스템이다. 위험한 행성 개척 임무 중 사망하면 저장된 기억을 새 육체에 주입해 부활시키는 이 방식은, 현대 사회의 부품화된 노동력을 극단적으로 풍자한다. 특히 미키 17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미키 18이 출력되며 발생하는 '중복 존재'의 문제는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흥미로운 질문이다. 봉 감독은 여기서 '테세우스의 배' 역설을 끌어온다. 모든 판자가 교체된 배를 여전히 같은 배라고 부를 수 있듯, 17번이나 복제된 미키를 여전히 최초의 미키 반스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철학적 의문이다.
하지만 봉준호는 이 심오한 주제를 무겁게만 다루지 않는다. 폐쇄된 기지 안에서 자신만의 왕국을 꿈꾸는 정치인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의 비루한 권력욕과,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며 지질하게 생존을 도모하는 미키의 모습은 봉 감독 전작들에서 보았던 계층 간의 부조리와 시니컬한 유머를 고스란히 계승한다. 니플하임 행성의 외계 생물체 '크리퍼'와의 조우 역시 단순한 SF적 볼거리를 넘어 인류의 침략적 프론티어 정신을 꼬집는 장치로 활용된다.
<미키 17>은 거대 자본 속에서도 봉준호다움을 잃지 않은 작품이다. 반지하 방이나 설국열차의 꼬리 칸에서 보여주었던 인간 존재에 대한 애정 섞인 비판은 이제 우주의 식민 기지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비록 17번이나 죽고 살아나는 과정에서 인간적 존엄은 다마고치 수준으로 떨어졌을지 모르나,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생존 본능은 여전히 '사람 냄새'를 풍긴다. (박재환.2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