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아파트
경수진이 주연을 맡은 저예산영화 [백수아파트]는 마동석의 '빅펀치픽처스'가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다. '대중'영화에 대한 촉이 남다른 마동석은 '범죄도시' 말고도 저예산의 영화를 곧잘 만든다. 적당한 액션과 적절한 스토리, 괜찮은 감동코드나 공감 요소가 있으면 적절한 규모의 예산으로 다양한 작품을 내놓으며 시장 상황에 민첩하게 적응하고 있다.
거울(경수진)은 조카들과 함께 새벽부터 동네를 휘저으며 '지역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재래시장에 불법 정차된 생수배달 트럭을 붙잡고 일장연설을 한다. 이런 오지랖에 진절머리가 난 동생 두온(이지훈)은 누나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그런다. 거울은 이제 인근 아파트에 한 달간 월세로 들어가 살게 된다. 오지랖 넓은 거울에게는 어디를 가나 '나서야할 일'들이 항상 기다리는 모양. '백세아파트'의 상황이 심상찮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이 아파트에는 새벽 4시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소음이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오지랖 대마왕 경수진은 이제 새벽잠을 반납하고 그 괴소음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아파트를 헤집고 다닌다. 그런 거울이 부담스럽던 이웃들도 하나둘씩 대의에 동참하여 내 집 지키기 대열에 합류한다. ‘층간소음’을 둘러싼 아파트의 비밀과 음모에 다가서게 되면서 이것이 굉장히 위험한 오지랖임이 밝혀진다.
영화는 배우 경수진의 매력을 극한치로 이용한다. 털털하고, 서민지향적인, 그리고 소탈한 웃음. 이런 것들이 영화 첫 장면에서부터 과장되게 드러난다. 생수통 배달에 생업을 건 소시민의 트럭을 붙잡고 '의협심 넘치는 시민조로‘로 나서는 것이 당황스러울 정도이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부 지나서야 거울이 왜 그렇게 ’부조리‘와 ’부주의‘에 기를 쓰고 나서는지를 보여준다.
백수아파트
영화는 세상 모든 일을 허투루 보지 않는 거울이 ’백세아파트‘로 들어오면서, 하나같이 이상하게만 보이는 주민들을 하나둘 직접 만나, 대화하고, 소통하며, 같은 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물론 그들의 공동의 적은 ’층간소음과 그 너머의 악당‘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층간소음의 고통‘과 ’재건축 딜레마‘를 이야기하는 작품은 아니다.
충무로에서 오랫동안 연출부로 있으면서 기회를 엿보던 이루다 감독은 자작 시나리오로 감독 데뷔를 하게 된다. 시나리오는 개성이 넘친다. 소시민의 애환이 서려있고, 소시민의 아픔을 스스로 극복하는 순간이 있고, 소시민의 오래된 고통을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클라이맥스 사건이 펼쳐질 때, 한국영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경광등 번쩍이는 경찰차나 끝까지 미적대는 행정력은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저예산영화의 고육지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끝까지 그런 소시민의 피, 땀, 눈물로 이야기가 완성된다. ’백세‘아파트가 ’백수‘아파트가 된 이유인 듯하다. 백수는 시간이 많다. 모이면 힘이 세다.
▶백수아파트 (영제:The Noisy Mansion) ▶각본/감독: 이루다 ▶출연: 경수진(거울) 고규필(경석) 이지훈(두온) 김주령(지원) 정희태(경비) 박정학(무학) 차우진(세온) 최유정(샛별) 김세아(명경) ▶제공/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작: ㈜빅펀치픽쳐스, ㈜노바필름, ㈜이오콘텐츠그룹 ▶개봉: 2025년 2월 26일/ 97분/ 12세이상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