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맘보
서기 2000년을 앞두고 세상은 '밀레니엄 버그'라는 실체 없는 공포와 새로운 천 년에 대한 환희로 들떠 있었다. 대만의 거장 후효현은 그 미묘한 시기, 대만 청춘들의 흔들리는 기운을 <밀레니엄 맘보>에 담아냈다. 영화는 10년의 시간이 흐른 뒤, 주인공 비키가 2000년의 자신을 회상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비키는 네온사인이 명멸하는 지룽의 육교를 마치 패션 화보의 한 장면처럼 뛰어간다. 그녀의 일상은 무의미한 술자리와 수다, 그리고 의지 없는 남친 샤오하오와의 희망 없는 동거로 채워진다. 마약과 의처증에 찌든 샤오하오는 비키의 삶을 갉아먹고, 비키는 이 지질한 인연을 끊어내지 못한 채 방황한다. 탈출구를 찾듯 일본 유바리의 설원을 찾고, 조직의 형님 가오제에게서 잠시 마음의 안정을 얻기도 하지만, 그 역시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결국 비키는 사라진 것인지 버림받은 것인지 알 수 없는 기억의 저편을 헤맨다.
<비정성시>로 대만의 역사를 통찰했던 후효현은 이 작품에서 마치 왕가위처럼 감각적인 카메라 워킹으로 청춘의 단면을 박제한다. 자극적인 조명과 심장을 두드리는 EDM 사운드는 우주로 사라져버린 당시의 미약한 생존 신호음처럼 들린다. Y2K와 함께 찾아온 시대의 혼란은 목적지 없는 청춘의 방황과 맞물려 서늘한 절망을 선사한다.
영화가 나온 지 20여 년이 흘렀다. 홍콩의 섹시 심볼에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난 서기는 이제 감독 데뷔를 앞둔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대만 뉴웨이브의 기수 후효현은 2023년 알츠하이머 투병 소식과 함께 은퇴를 선언했다. 거장이 포착했던 그해 겨울의 눈과 청춘의 맘보는 여전히 스크린 속에서 덧없이 흐르고 있다. ... (박재환영화리뷰.800자리뷰).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