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홍민 감독의 전작 <물고기>나 <혼자>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그의 신작 <그대 너머에>가 던지는 존재론적 질문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라는 미디어를 통해 인간의 실존과 기억의 경계를 탐구해온 감독은 이번에도 자기성찰적인 화법으로 시나리오와 현실, 꿈과 과거가 뒤엉킨 미로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존재에 대한 감독의 집요하고도 진지한 탐구생활이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제작사로부터 외면받는 시나리오를 쓰는 감독 경호(김권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공원 정자에서 울고 있는 그 앞에 지연(윤혜리)이 나타나 알츠하이머를 앓는 엄마 인숙(오민애)을 만나달라고 애원한다. 인숙이 20년 전 인연이었던 경호를 끊임없이 글로 써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내 아버지가 아니냐"는 지연의 황당한 질문과 함께 영화는 기억의 파편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여기 있는 엄마는 아저씨 기억 속에 있는 엄마예요"라는 대사가 나오는 순간, 관객은 마치 <식스 센스>의 주인공이 된 듯 존재의 불확실성 앞에 놓이게 된다.
박홍민 감독은 에셔의 판화처럼 시간과 공간을 뒤틀며 명상적인 이미지를 구축한다. 특히 뜬금없이 등장해 화면을 채우는 개미들의 행진은 루이스 브뉘엘이나 테렌스 맬릭의 영화적 모먼트를 연상시키며 묘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재개발 직전의 허름한 동네를 배경으로 잃어버린 딸을 찾는 인숙의 외침이 메아리치는 롱테이크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인간의 움직임과 애타는 목소리는 존재의 나약함과 갈망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한다.
결국 영화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벽에 부딪힌다. 경호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고, 지연은 엄마에게 기억되지 못하며, 인숙은 거대한 원고 뭉치 속에 갇혀 있다. 감독은 전작들처럼 존재와 기억, 망각이라는 테마를 유지하면서도 한층 유려해진 영상미로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마지막 장면, 써다 만 시나리오가 펼쳐진 노트북 곁에서 여전히 전진하는 개미들의 모습은 매혹적이고도 아름다운 여운을 남긴다. #800자리뷰
